‘윤석열표 정책’ 좌초 위기… “의료·연금 개혁은 계속될 것”

입력 2025-04-07 02:04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윤석열정부가 중점 추진하려던 4대개혁(연금·교육·노동·의료)은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조기대선까지 2개월간의 ‘리더십 공백’이 불가피해진 만큼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사업,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DT) 도입, 글로벌 연구·개발(R&D) 사업 등 윤석열표 핵심 정책은 좌초될 위기에 놓였다. 다만 그동안 진전을 보인 내년도 의대 정원 문제는 일부 타격을 받을 수 있지만 큰 지장은 없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정부 관계자는 6일 “한 치의 국정 공백도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부처가 노력할 것”이라며 “시급한 업무부터 차질 없이 수행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내에서는 헌재의 파면 결정으로 윤 전 대통령이 직접 드라이브를 걸었던 탈원전 폐기 추진 등 에너지 정책이 ‘멈춤’ 상태로 전환됐다는 말이 나왔다. 동해 심해 가스전 개발사업인 ‘대왕고래 프로젝트’는 무산 전망까지 제기됐다.

노동개혁 등은 동력을 상실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5월 특수고용직·플랫폼 종사자·프리랜서 등을 보호하는 ‘노동약자보호법’ 추진을 직접 지시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노동자 모두를 ‘일하는 사람’으로 규정해 보호하자는 입장이라 법안 진전 가능성은 작다. 정치권에서는 관련 업무 수장인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대선 출마를 위해 조만간 사직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AIDT, 고교 무상교육 등 윤석열정부가 추진해 온 교육 정책에도 제동이 걸렸다. 더불어민주당은 AIDT의 교육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며 반발해왔다. 정권교체가 이뤄질 경우 일부 학생들에게 도입됐던 AIDT 자체가 사라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고교 무상교육 지원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민주당은 ‘고등학교 전 학년 무상교육’에 들어가는 예산의 47.5%를 현 중앙정부가 3년 더 부담하도록 하는 지방교육교부금법 개정안을 추진했지만, 재의요구권(거부권)에 가로막혔다. 현 정부는 고교 교육을 지방교육재정으로 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입장이지만, 조기 대선 결과에 따라 민주당이 이를 재추진할 수 있다.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등 윤석열정부의 부동산 정책도 전면 중단됐다. 국회에도 관련 법안이 계류 중인 상태지만 지난 12·3 계엄사태 이후 법안 심사는 멈춰 섰다. 시장은 대선 국면에서 파급력이 큰 부동산 정책 관련 법안이 통과할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 임대차 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 폐지,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 폐지도 민주당이 강력 반대 의사를 밝혀 온 만큼 추진이 어려울 전망이다.

윤 전 대통령 파면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문제로 촉발돼 1년 넘게 계속돼 온 의·정 갈등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필수·지역의료 강화를 위해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등의 성과를 냈지만 이후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에서 추가 논의하기로 한 후속 조치들은 표류하게 됐다.

다만 전문가들은 필수의료 강화를 골자로 한 의료개혁의 방향성은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는 “복지 정책이라는 측면에서 개혁의 흐름은 유지될 거라 본다”고 말했다. 이상일 울산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인구구조 변화 등으로 현 보건의료체계가 지속 가능하지 않은 시점이 곧 도래할 것”이라며 “대선 주자들이 이 문제를 공약에 어떻게 담을 것인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연금개혁 중 ‘더 내고 더 받는’ 모수개혁은 지난 2일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공포되며 마무리됐다. 핵심인 구조 개혁은 각 후보가 대선 공약으로 제시할 전망이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모수 개혁에 대한) 청년들의 우려는 구조개혁을 이어갈 동력”이라며 “청년들이 안심할 수 있는 연금개혁 비전을 보여주는 것이 대선 국면의 중심 의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민지 박은주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