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요 빅테크들이 주도하는 글로벌 인공지능(AI) 투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방침이 현실화하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관세 영향으로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비용이 증가하면 기업에 부담이 되는 것은 물론, AI 사용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행정부의 전방위적 관세 부과가 기업들의 AI 인프라 구축 비용을 높일 수 있다고 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등은 세계 전역에 데이터센터를 짓고 있는데, 관련 자재와 부품에 관세를 물리면 건설비는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기에 반도체 관세까지 도입되면 인프라 비용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월 발표한 AI 인프라 건설에 5000억 달러(약 730조원)를 투입하는 ‘스타게이트 프로젝트’가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도 있다.
미 싱크탱크 케이토연구소의 매튜 미텔스테트 연구원은 최근 백악관 과학기술정책실(OSTP)에 제출한 ‘AI 행동 지침’ 제안서에서 “높은 관세는 AI 투자 효과를 저해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철강, 변압기 등 데이터센터 핵심 자재와 장비에 관세를 매기면 미국 내 데이터센터 건설이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보고서는 전자 부품 및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갈륨 아세나이드, AI 그래픽처리장치(GPU)에 필요한 탄탈룸 등 원료도 미국에서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관세 부과 시 제조 비용이 크게 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빅테크들이 비용 증가를 AI 서비스 사용자에게 전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관세 전쟁’은 미국 빅테크가 이끌고 있는 AI 투자를 위축시키는 방아쇠가 될 수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발표 이후 각국이 보복 조치까지 예고하자 미 대형 기술 기업 ‘매그니피센트 7(M7)’의 주가는 급락했다. 임지용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해외에 생산 기지를 둔 애플과 아마존, 테슬라, 엔비디아의 관세 피해가 클 것”이라며 “관세 정책이 변경 없이 진행된다면 빅테크의 실적 추정치도 하향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미 플랫폼 기업들은 유럽연합(EU)의 보복에도 직면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의 관세 조치에 대한 EU의 대응 관련 “어떤 것도 배제하지 않는다”며 보복 관세와 디지털세 부과 가능성 등을 언급했다. 에리크 롱바르 프랑스 재무장관은 EU가 빅테크들의 데이터 사용을 겨냥할 수 있다고 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
벌써 데이터센터 사업을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빅테크도 있다. 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MS는 대형 데이터센터 설립 프로젝트를 축소하고 있다. MS는 미국 일부 주와 영국, 인도네시아, 호주에서 데이터센터 부지 개발을 중단하거나 보류했다. MS는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최대 협력사로, 올해 상반기까지 데이터센터에 800억 달러(약 117조원)를 투입할 계획이었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