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은 삶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래서 삶의 방식이 다른 공동체가 신앙만으로 하나 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익숙함을 내려놓고 낯선 차이를 품기 위해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공동체의 통합 여정은 더욱이 깊은 이해와 세심한 배려가 필요할 수밖에 없다. 서로의 다름을 뛰어넘어 따뜻한 동행을 선택한 경기도 평택의 남부사랑하는교회(한덕진 목사)를 최근 방문했다.
하나님의 때, 예비된 만남
한덕진(53) 목사는 침례신학대학교 재학 중 활동한 ‘한사랑장애인선교회’ 봉사를 통해 장애인 선교의 비전을 품게 됐다.
그는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은 늘 가장 연약한 이들, 귀신 들린 자 고아 과부 장애인 가난한 이들을 찾아가 그들의 삶을 회복시키셨다”면서 “나도 조금이라도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고자 장애인 사역에 헌신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 목사는 경기도 평택(1999)과 안성(2006)에 각각 ‘평안밀알선교단’과 ‘평안밀알복지재단’을 세워 장애인 복지에도 힘써 왔다. 2012년 3월에는 중증장애인 4명과 함께 ‘사랑하는교회’를 세우고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는 대신 그 비용을 예배 공간 임대료로 사용했다.
하지만 이런 헌신에도 불구하고 2023년 임대하던 건물이 매각되면서 예배 공간을 급히 비워야 했다. 교회 재산은 전세 보증금 3000만원이 전부였다. 50여명 중 20여명이 장애인이었던 교회에 1층 예배당은 필수였지만, 높은 임대료 탓에 새 공간을 구하는 건 막막할 따름이었다.
그 무렵 평택시 고덕면의 시골 마을에 있는 평택남부교회(조종희 목사)가 은퇴를 앞둔 담임목사를 대신할 새 리더를 찾고 있었다. 시골교회 현실 속에 전도는 점점 어려워졌다. 활력을 잃어가던 교회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합병을 고민했다. 합병위원회는 여러 교회를 검토하던 중 ‘사랑하는교회’에 먼저 손을 내밀었다.
한 목사는 “당시 예배 공간이 절실했음에도 처음엔 합병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고 말했다. 평택남부교회 성도들이 장애인이 중심이 된 교회와 함께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거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몇 차례 만남을 통해 두 교회 성도 모두가 합병에 찬성하게 됐습니다. 알고 보니 합병위원 중에 장애 자녀를 둔 분들이 있어 ‘장애인이면 어떤가’ 하는 열린 마음이 있었더라고요.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참 놀라웠습니다.”
서로가 ‘다름’을 품은 공동체
두 교회는 통합을 위해 각 교회에서 4명씩 운영위원을 뽑아 합병위원회를 구성했다. 운영위원들은 예배 시간과 방식 등 서로 다른 예배 환경을 하나로 맞춰가며 공동체 통합을 이뤄갔다.
평택남부교회는 장애인 성도들이 불편함 없이 예배드릴 수 있도록 교회를 정성껏 리모델링했다. 휠체어 접근성을 위해 1층 턱을 없애고 경사로와 장애인 화장실을 설치했다. 출입문은 자동문으로 바꿔 세심한 배려를 더했다. 공간 통합을 넘어 함께 예배드릴 마음의 준비도 함께 갖춘 것이다.
지난해 5월 26일 평택남부교회와 사랑하는교회는 ‘남부사랑하는교회’라는 새로운 이름 아래 첫 예배를 함께 드렸다. 한 목사는 “예배를 드리는데 마치 꿈꾸는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런데 이날 그는 두 교회 성도들을 향해 뜻밖에도 ‘우리 친해지지 말자’고 말했다.
“억지로 급히 친해지기보다 서로를 천천히 알아가며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자는 뜻이었어요. 서두르지 않고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진짜 공동체가 되길 바랐습니다.”
한 목사는 ‘서로에 대한 이해는 소통에서 시작된다’는 믿음으로 첫 예배 후 주일 오후 예배에 변화를 줘서 성도들을 연령대별 목장으로 새롭게 꾸렸다. 함께 말씀을 나누고 교제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 성도들은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단독 목회를 시작하면서 돌봐야 할 성도와 사역 대상이 달라진 것에 대한 부담이 없을 순 없었다. 한 목사는 “장애인 성도는 익숙했지만, 비장애인 성도를 어떻게 양육할지 막막하고 자신이 없었다”면서 “하지만 지금까지는 성령께서 공급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한 걸음씩 감당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배려가 활기로… 생기 되찾은 공동체
장애인 성도를 향한 배려가 교회 안에 스며들자 교회 봉사와 각종 모임에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정체돼 있던 공동체도 점차 생기를 되찾아갔다.
탁구를 좋아하는 한 장애인 청년을 위해 장로들은 교회 외부에 탁구장도 마련했다. 이곳은 장애인과 비장애인 성도가 함께 어울리는 소통의 공간이 됐고 이젠 전 교인이 참여하는 정기 탁구대회로 자리 잡았다.
한 목사는 “통합 이후 교회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분위기 속에서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웃음과 활기가 넘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서로를 품은 공동체의 시선은 이젠 마을로 향한다. ‘먼저 마을을 섬기는 교회가 되자’는 취지로 마을잔치와 바자회를 열며 주민들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장애인이 많은 교회라 혹시나 거부감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기우였다. 오히려 교회를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더 많았다. 새신자도 하나둘 늘어나며 교회는 마을 속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한 목사는 “하나님의 은혜는 장애를 뛰어넘는다”면서 “모두가 기뻐하고 약자가 환영받는 교회가 성경이 말하는 공동체라 믿는다. 앞으로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세워가겠다”고 말했다.
평택=박효진 기자 imher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