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트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실사화 전략에 빨간불이 켜졌다. 마블 스튜디오의 히어로물이 고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나마 ‘믿는 구석’이었던 실사화 작품들마저 연이어 흥행 참패를 기록하며 디즈니가 사면초가에 빠졌다.
6일 가디언 등 외신들에 따르면 디즈니는 애니메이션 ‘라푼젤’의 실사화 제작을 돌연 중단했다. 최근 실사화 작품들이 극장에서 잇단 실패를 겪으며 위기감이 커진 데 따른 결정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디즈니는 지난 연말 애니메이션 ‘라푼젤’을 실사 영화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휴 잭맨 주연의 뮤지컬 영화 ‘위대한 쇼맨’(2017)을 만든 마이클 그레이시 감독이 연출을, ‘토르: 러브 앤 썬더’(2022)의 제니퍼 케이틴 로빈슨 작가가 각본을 맡아 화제가 됐다. 디즈니는 배우 플로렌스 퓨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고 사전 제작 단계에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2010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라푼젤’은 전 세계적으로 5억9246만 달러(약 8600억원)의 흥행 수익을 거뒀다. 가수 겸 배우 맨디 무어가 연기한 주인공은 왕자의 키스만을 기다리던 동화 속의 수동적인 여성상을 깨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디즈니가 ‘라푼젤’ 제작을 중단한 데는 실사 영화 책임자가 교체된 영향도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디즈니 만화 실사판 제작을 맡았던션 베일리 사장은 지난 2월 영화 ‘인어공주’의 실패를 책임지고 사임했다. 디즈니는 최근 베일리 사장의 후임으로 파라마운트 픽처스 공동 사장 출신인 다리아 체르체크를 임명했다.
지난달 국내 개봉한 영화 ‘백설공주’는 2억5000만 달러(약 3675억원)의 제작비를 들였음에도 북미에서 개봉 후 열흘간 6680만 달러(약 983억원)의 수익을 올리는 데 그쳤다. 라틴계 미국 배우 레이철 제글러를 주인공 백설공주 역에 캐스팅하면서 과도한 정치적 올바름(PC)주의로 원작의 감동을 훼손했다는 논란에 휩싸이는 등 개봉 전부터 잡음에 시달렸다.
지난해 개봉한 실사 영화 ‘인어공주’도 백설공주와 비슷한 논란을 겪으며 손익분기점에 한참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아들었고, 디즈니 최고 다양성 책임자였던 라톤드라 뉴턴 수석 부사장 등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당시 외신들은 실적 개선에 대한 투자자들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을 내놨다.
뉴욕 포스트는 “지적재산(IP)을 활용해 실사 리메이크 영화를 만드는 디즈니의 전략은 ‘백설공주’ 이전에, 적어도 수익 면에서는 효과가 있었다. ‘라이온 킹’(2019)과 ‘미녀와 야수’(2017), ‘알라딘‘(2019) 리메이크작은 전 세계적으로 각 10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며 “그럼에도 ‘피터와 드래곤’(2016), ‘덤보’(2019) 등의 작품을 봤을 때 실사화는 완벽한 전략은 아니었다”고 짚었다.
업계는 향후 개봉할 두 편의 영화에 대한 대중의 반응이 디즈니의 실사 영화 전략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릴로 앤 스티치’(2002)의 실사 영화가 다음 달 23일, 1·2편 모두 흥행에 성공한 ‘모아나’ 실사 영화가 내년 7월 개봉한다.
할리우드리포터는 “두 작품 모두 디즈니에 희망을 주는 신호가 있었다”며 “올해 슈퍼볼 경기에 스티치가 등장한 영상이 엄청난 조회수를 기록했고, 영화의 예고편은 역대 디즈니 실사 영화 예고편 중 두 번째로 많이 시청됐다. ‘모아나’는 지난해 개봉해 10억 달러의 수익을 낸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