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구휼제도, 현금수당·장애인 자립지원으로 발전

입력 2025-04-07 23:13

“나이 80세 이상 및 독질자(篤疾者)에는 시정(侍丁) 1명을 주고 90세 이상인 자에게는 3명을….” 고려사 현종 11년(1020년)의 기록이다. “부모가 나이 70세 이상이 된 사람과 독질이 있는 사람은 나이 70세가 차지 않았더라도 시정 한 사람을 주고.” 이것은 조선왕조실록 세종 14년(1432년)의 기록이다(정창권의 책 ‘역사 속 장애인은 어떻게 살았을까’에서 인용).

여기서 독질자는 중증 장애인을 말하고 시정은 돌봄을 담당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 기록을 통해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돌봄 제도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노인과 장애인에게 마음을 쓴 고려 현종과 조선 세종이 당대의 현군이기는 했지만 이런 제도가 두 임금의 대에 그친 것은 아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삼국이 모두 ‘홀아비, 홀어미, 부모 없는 자식, 자식 없는 늙은이(환과고독·鰥寡孤獨)와 늙고 병들고 가난하거나 스스로 살기 어려운 사람(노병빈핍 불능자존자·老病貧乏 不能自存者)’들을 나라가 구휼하는 제도를 두고 있었고 이 전통은 고려와 조선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왔다. 이들에 대해서는 각종 물품을 나누어 주기도 하고 조세와 군역을 면제하거나 형벌을 덜어 주었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각종 현금 수당을 주기도 하고 세금을 감면해 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돌봄을 맡도록 시정 제도를 두어 아들이나 손자의 역(役)을 면제해 주고 가족이 없으면 나라에서 다른 사람을 구해 주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장애인들에게 일정한 직업을 주어 자립을 돕기도 했다. 대표적인 예가 시각 장애인이다. 고려 이후 시각 장애인에게는 점술가와 악기 연주자의 직업을 주었다. 기우제를 시각 장애인이 맡았다는 기록, 뛰어난 음악가와 점술가가 시각 장애인 중에서 배출됐다는 기록이 많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우리 역사에서도 장애인의 삶이 쉽지 않았을 것이고 차별이 있었던 것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사회생활에서 배척되고 소외됐던 것은 아니다. 서양식 자본주의와 능력주의가 대두하기 전까지 장애인은 특별한 것이 없는 평범한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증거는 많다.

장애인을 지칭하던 전통적 공식 용어였던 독질자, 잔질자(殘疾者·경증 장애인)라는 말 대신 ‘불구자(不具者)’라는 말이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10년 이후라고 한다.

(재)돌봄과 미래·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