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지난해 12·3 비상계엄 이후 한국 사회를 분열과 혼란에 빠뜨렸던 탄핵 정국은 막을 내렸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이어 8년 만에 또다시 국민의 투표로 선출된 대통령이 중도 하차하는 헌정사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이번 탄핵 사태의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헌정질서와 정치 개혁의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여야의 정치 원로, 학계의 석학들도 오는 6월 치러질 조기 대선이 개헌을 비롯해 대한민국의 미래를 설계하고 국민 통합을 일궈낼 계기가 돼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주문했다.
“개헌 통한 승자독식 권력구조 개편 시급”
정대철 대한민국 헌정회 회장
정대철 대한민국 헌정회 회장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으로 실시되는 조기 대선 과정에서 승자독식의 권력 집중형 구조를 개편하는 헌법 개정이 반드시 함께 논의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 회장은 6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지나치게 집중된 대통령제의 권력을 분산시키는 권력구조 개헌이 시급하다”며 “60일 이내에 치러질 조기 대선과 동시에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안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방법을 고려해 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전직 국회의원들로 구성된 헌정회는 지난해 11월 분권형 대통령제(이원집정부제)와 4년 중임제를 골자로 한 개헌안 초안을 발표한 상태다. 대통령 권력 분산에 방점을 찍고 이를 위해 책임총리제, 양원제(상원제 신설), 지방분권 강화가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정 회장은 동시에 ‘정치의 복원’을 강조했다. 그는 “탄핵 정국에서 펼쳐진 ‘광장의 정치’를 끝내고 이제 ‘의회 정치’로 돌아가야 한다”며 “국민이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정치권이 각별히 노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민주주의를 더 발전시켜 떨어졌던 국가신인도를 다시 높여야 한다”며 “침체된 경제도 원상회복될 수 있도록 경제 성장에 힘써야 한다. 양극화를 극복해 함께 더불어 잘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헌재에서 8대 0 전원일치로 탄핵 인용 판결이 나와 잘됐다”며 “이제 승복을 통해 극심한 국론 분열을 극복하고 국민 대통합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윤 전 대통령을 향해서는 “결과에 승복하자고 당원과 국민에게 얘기하고, 본인은 조용히 물러나는 게 바람직한 태도”라고 말했다. 또 “승복하지 않는 건 스스로 국민의 기본 의무를 포기하는 것이자 국가의 존립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7 공화국 청사진 제시하는 대선 돼야”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인용으로 치러질 조기 대선과 관련해 "제7공화국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선거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6일 통화에서 "또 한 번 (현직 대통령이) 탄핵당했는데, 계속 '6공화국'을 이어갈 수는 없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지금 남아나는 대통령이 없는 상황에서 그런 대통령을 또 만든다고 생각하면 국민도 이제 질리지 않겠느냐"며 "이런 풍토에서 내가 '5년 단임제 대통령' 한 번 해 먹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뽑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선에 출마할 후보들이 개헌이나 선거법, 정당제도 등 전반적인 구상을 국민 앞에 설득력 있게 제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이사장은 헌재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에 대해서는 "재판관들 양심이 있지 어떻게 다르게 생각했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친정인 국민의힘을 향해서도 "어쨌거나 두 번이나 (대통령이) 탄핵당한 정당"이라며 "(윤 전 대통령 파면에) 책임 있는 사람들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말로만 '새출발'을 외친다면 누가 믿겠느냐"고 쓴소리했다. 그러면서 "7공화국의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당도 완전히 해체 수준으로 새로 태어나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 이사장은 더불어민주당과 유력 대선 주자인 이재명 대표에게는 "이런 탄핵 분위기에서 제대로 된 야당 지도자라면 40~50% 지지는 받아야 하는데 30%대 지지도에 그치고 있지 않느냐"며 "더 겸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민주당이 먼저 '어쨌거나 한 정권이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한 건 우리도 책임이 있다'며 얘기했다면 훨씬 더 박수 받았을 것"이라며 "자신들이 승자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개헌 논의 통해 사회 문제 이슈도 함께 건드려야”
조재현 한국헌법학회장
조재현 한국헌법학회장
한국헌법학회장인 조재현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6일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결정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 만한 결정이 나왔다"고 평가했다. 그는 "대통령 선거와 함께 우리 헌정질서를 좀 더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개헌 논의가 사회 저변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조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윤 전 대통령 파면이 헌법이 잘못된 탓은 아니다"면서도 "대한민국이 지금보다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87년 체제' 헌법을 한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탄핵 정국 이후의 개헌 논의와 관련해 "대통령 권한 남용에 대한 대책뿐 아니라 헌정질서 안정과 사회 안정 차원에서도 계속 논의해야 한다. 권력구조 개편, 선거제 개편은 물론 지방분권 등도 논의에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지금 정치권의 관심은 온통 조기 대선에 가 있지 않겠느냐"면서도 "개헌 논의를 통해 선거법이나 지방분권 등 우리 사회에 문제 되는 이슈들을 함께 건드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대선 준비와 맞물려 시민사회 차원에서도 개헌 논의에 불을 붙여야 한다는 의미다.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해 조 교수는 "대통령을 한 번 하고 그만두는 것보다는 아무래도 한 번 더 할 기회가 있을 때 조금 더 열심히 국민을 위해 일할 것 같다"며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중임제로 바꾸는 방안을 제안했다. 다만 정치권 일각에서 개헌을 통해 대통령과 국회의원, 지방자치단체장이 임기를 동시에 시작하도록 맞추자고 요구하는 데 대해서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의 임기를 맞추면 어느 한 세력이 독식하면서 4년 동안 완전히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통령 탄핵은 국가적 불행… 정치 문화 달라져야”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
양승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조기 대선이 현직 대통령 파면이라는 국가적 불행의 반복으로 열리게 된 만큼 이를 치유하는 정치 개혁과 국민 화합을 논의하는 장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양 명예교수는 6일 통화에서 "두 차례(박근혜·윤석열 전 대통령)나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를 탄핵할 수밖에 없었던 건 국가적 불행이고 수치"라며 "우리가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고 반성했다. 그러면서 "6월 조기 대선은 국가의 '백년대계'를 다시 세우는 선거가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양 명예교수는 특히 "정치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과거에는 대선에서 국가 과제, 시대정신, 국정 철학과 원칙 등이 회자됐다면 지금은 상대방에 대한 네거티브로 무조건 이기려는 것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또 "한국 정치는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말하는 게) 전부 다 임기응변식"이라며 "장기적인 흐름을 갖고 그에 따라 어떤 결정을 하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땜질식'으로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이런 위기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에 차분하게 집중해야지 정치적 공방에 매몰되면 안 된다"며 "이번에도 치유하지 못하면 한국 정치는 그야말로 '사망선고'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 명예교수는 '화합을 말하는 리더십'을 강조했다. 그는 "지금 우리에겐 누가 필요한가. 커진 사회를, 다양해진 사회를 잘 관리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이를 정치적으로 말한다면 서로 타협하고 협상해서 중지를 끌어낼 수 있는 그런 리더"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제도를 갖다 놔도 소용없다"며 "갈등과 혐오를 부추기는 지금의 정치문화 개선 없이는 계엄과 탄핵으로 대변되는 극단적 갈등을 치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종선 김판 정우진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