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14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탄핵소추된 뒤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되면 대선을 언제 치를지가 관심이었다. 탄핵 사유가 명백해 일찍 결론이 나 벚꽃 대선이 유력한다는 전망이 가장 많았다. 그러다 5~6월 장미 대선 얘기가 나왔고, 탄핵심판이 예상외로 길어지면서 여름 장마 대선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탄핵이 안 되면 윤 전 대통령이 임기 단축으로 물러나는 것을 전제로 12월 겨울 대선일 수 있다는 예상도 있었다. 하지만 윤 전 대통령이 지난 4일 파면되면서 6월 초 장미 대선을 치르게 됐다.
세계적으로 꽃과 관련된 정치 혁명이 많았다. 포르투갈의 카네이션 혁명(1974년), 조지아 장미 혁명(2003년), 키르기스스탄 튤립 혁명(2005년), 버마 샤프란 혁명(2007년), 튀니지 재스민 혁명(2010년), 이집트 연꽃 혁명(2011년), 대만 해바라기 혁명(2014년) 등이 그런 예다. 혁명 때 현지인에 익숙한 꽃은 국민들 마음을 한데 모아 구체제를 몰아내는 상징이 됐고, 대체로 무장 혁명이 아닌 평화 혁명으로 이어지게 했다.
6월 초는 늦봄이 지나고 초여름이 오는 때이기도 하다. 이 무렵 가장 가까운 절기는 단오(음력 5월 5일)다. 올해 단오는 양력으로 차기 대선을 얼마 안 남겼을 즈음인 5월 31일이다. 단오는 모내기를 끝내고 더위가 본격적으로 오기 전 풍년을 기원하던 행사다. 이른 봄부터 모내기까지 고달픈 농번기를 지나 잠시 한숨을 돌리며 무더위에 대비해 심신을 가다듬으며 재충전하던 시기였다.
윤 전 대통령이 물러났지만 아직은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혼란이 다 정리됐다고 보긴 어렵다. 갈등과 대립은 여전히 잠재돼 있고, 국정 리더십의 불확실성도 이어지고 있다. 꼬일 대로 꼬인 매듭의 고리를 이제 겨우 하나 풀어냈을 뿐이다. 어쩌면 앞으로의 2개월을 어떻게 보내고 어떤 대선을 치러내느냐가 한국의 미래에 더 중요할 수 있다. 분열된 이들의 마음을 한데 모아 나라의 힘을 재충전하는 시기로 만들어야 하고, 구체제와 구별되는 새로운 리더십을 세우는 또 하나의 혁명을 준비할 때다.
손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