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가 마침내 미국발 관세전쟁에 직면하게 됐다. 일말의 기대감도 있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고율의 상호관세 시행을 발표하면서 자유무역 시대가 막을 내리고 신보호주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상호관세 시행으로 미국의 평균 관세율은 20%를 상회할 것으로 보인다. 1930년대 대공황의 빌미를 제공했던 당시 관세율 수준보다 높아질 전망이다. 최악의 관세 시나리오가 현실화한 것이다.
트럼프는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흑자를 얻는 국가에 예외 없이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20%의 상호관세율이 부과된 유럽연합(EU)보다 한국을 포함한 주요 아시아 국가의 세율이 높았다. 한국 25%를 비롯해 중국 34%, 일본 24%, 대만 32%, 베트남 46%, 태국 36% 등 주요 아시아 교역 상대국은 높은 관세율을 적용받게 됐다.
상호관세 시행이 예고된 악재라지만 높은 관세율로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공산이 커졌다. 일부에서 미국의 상호관세에 대한 주요국의 맞보복 관세 조치가 현실화되면 제2의 대공황이 촉발될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번 미국발 상호관세가 세계 및 국내 경제에 던져주는 시사점으로 우선 세계 교역 체제의 급격한 변화를 지적할 수 있다. 교역 규모가 줄어들 수 있음은 물론 자유무역에 기반한 국제 분업 구조 및 공급망 체제 와해가 현실화됐다. 저임 노동력 활용 차원에서 중국 및 아세안 국가들이 제조업 공장 역할을 하고 미국 등 선진국이 소비하는 분업 체계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특히 유럽 및 중국 등도 자국 산업 보호 중심의 무역 및 산업 정책을 강화할 수 있음도 글로벌 분업 체제를 흔들 것이다.
기축통화로서 달러화의 위상 약화 가능성이다. 그동안 미국의 막대한 재정적자 등 넘쳐나는 달러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달러화가 강세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 경제의 견고함도 있었지만 동맹국으로서 안보·경제 우산을 제공했던 역할도 한몫했다. 그러나 미국이 상호관세를 통해 자국 경제 및 산업만을 보호하고 나섰다면 미국에 대한 신뢰, 특히 미국 자산 등을 매입해주면서 보여줬던 달러화에 대한 신뢰가 약화될 것이다. 더욱이 미국 경제 예외주의 현상 약화도 달러화 약세 요인으로 평가된다. 상호관세 시행 충격이 전 세계로 확산되겠지만 일차적으로 미국 경제에 치명타를 줄 것이다. 관세 인상으로 인한 수입물가 상승, 가계 및 기업들의 경제활동 위축이 미국 경제의 침체 위험을 높일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경제가 입게 될 타격과 이에 대한 조기 대응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리 기업의 대미 직접 수출은 물론 중국 베트남 등 아세안 생산기지를 통한 우회 수출 역시 큰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이는 가뜩이나 둔화하고 있는 국내 수출 경기를 악화시킬 것이며, 기업의 투자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부에서 언급되던 올해 0%대 성장 가능성이 가시화하는 분위기다. 적극적인 정책 대응이 없다면 국내 경제·산업이 심각한 저성장 늪에 빠질 수 있다.
다행히 국내 경제가 정치 불확실성을 털어버리고 신정부 정책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됐다. 그러나 희망만으로 난국을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당장 상호관세율을 낮추기 위해 트럼프와의 개별 협상에 나서야 하지만 통수권자 부재 현상 때문에 조기에 수습하기 힘들다. 보호무역주의 정책에 맞서는 강력한 경기 부양과 산업 정책도 조기에 추진돼야 하지만 역시 지연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거센 폭풍에 맞설 시간은 충분치 않다. 한국 경제의 생존을 위해 더 이상의 대립보다 모두가 단합된 힘을 모을 때다.
박상현 iM증권 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