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 권력 어떻게 행사할지 불안한 유권자…
개헌 입장 밝혀야 진정성 인정받을 것
개헌 입장 밝혀야 진정성 인정받을 것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넉 달간 사람들의 마음을 꾹 짓눌렀던 것은 두 권력자에 대한 ‘포비아’였다. 하나는 비상계엄까지 선포했던 윤석열 전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의 기각·각하 결정으로 복귀하면 다음에는 대체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른다는 공포였다. 나머지 하나는 대통령이 파면되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의회 권력에 이어 행정 권력까지 잡게 되면 이 거대한 권력은 어떻게 견제될 것인가에 대한 불안이었다. 진보진영에 속한 사람들은 앞엣것을, 보수진영 사람들은 뒤엣것을 걱정했고, 그사이에 낀 사람들은 아마도 그 둘 모두를 불안해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지난 4일 헌재 결정으로 이 중 하나는 사라졌다. 헌재의 최종적인 결정에 불복할 방법은 없다. 국민의힘도, 광장에서 탄핵 반대를 외치던 보수 세력들도 일제히 승복했다. 윤 전 대통령이 돌아올 일은 없다. 그를 중심으로 결집한 지지층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정치적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이재명 포비아’다. 이 불안감의 본질은 그의 돌출적인 언행이나 사법리스크 같은 것이 아니다. 의회 권력을 이미 거머쥔 이 대표가 행정 권력까지 손에 넣었을 때 그의 권력 행사는 어떨 것인가에 대한 불안감이다. 이를 보수진영의 막연한 정치적 레토릭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건 계엄 사태를 전후해 예고편을 이미 봤기 때문이다. 윤석열정부를 코너로 몰고 간 ‘줄탄핵’과 입법 독주, 일방적인 예산 삭감까지. 계엄선포에 빗댈 일은 아니겠으나 170개 의석을 가진 민주당도 얼마나 독단적일 수 있는지 체감한 바 있다. 지금껏 제왕적 대통령제를 타깃으로 했던 개헌 공론장에서마저 ‘그럼 제왕적 의회는 어떻게 견제할 것이냐’는 질문이 나오기 시작했다.
헌재 역시 이를 분명히 짚고 넘어갔다. 윤 전 대통령의 파면 사유만큼이나 이번 헌재 결정문에서 눈길을 끌었던 대목을 보자. “피청구인(윤 전 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국회의 다수의석을 차지한 야당이 일방적으로 국회의 권한을 행사하는 일이 거듭되었고, 이는 피청구인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와 국회 사이에 상당한 마찰을 가져왔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이 대목을 낭독할 때 국회 탄핵소추대리인단을 추궁하듯 바라봤다. 민주당도 잘한 게 없다는 말이다.
이미 조기 대선 시계는 돌아가기 시작했다. 두 달이 채 남지 않은 이번 대선은 ‘이재명 대 반(反) 이재명’의 구도로 흘러갈 것이란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유권자들은 이 불안감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를 물을 것이고, 이 대표는 답을 해야 할 것이다.
그동안 이 대표가 내놓았던 ‘중도 보수’ ‘실용주의’와 같은 비전 제시만으로는 이 갈증이 해소되기 어려워 보인다. 모든 여론조사에서 이 대표가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지만, 50%를 넘는 정권교체 여론을 이 대표가 온전히 흡수하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표가 절제된 권력행사에 대한 진정성을 보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개헌에 대한 입장을 선명하게 밝히는 것이다. 개헌 논의의 키를 쥔 이 대표는 탄핵국면에서 입장 표명을 유보해 왔다. 12·3 비상계엄으로 인한 국정 혼란 수습이 먼저라는 이유에서였다. 헌재 결정으로 계엄 사태 수습의 한고비를 넘은 만큼 이 대표도 개헌을 통한 개혁 구상을 제시해야 한다. 이 대표는 2022년 대선 때는 4년 중임제와 결선투표제, 국무총리 국회추천제 등을 골자로 하는 개헌 구상을 밝혔었다.
이미 차기 대선에서 경쟁하게 될 국민의힘 대권 주자들과 민주당 내 비명계 주자들은 저마다의 개헌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대통령 4년 중임제 구상이 주를 이뤘는데, 대부분 주자는 차기 대통령 임기 단축을 함께 주장하며 권력분산 개헌에 대한 의지를 강조했다. 하지만 추격하는 주자들이 내미는 개헌론의 파괴력은 지지율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 본디 진정성이란 잃을 것이 많은 사람이 앞장설 때 빛이 나는 법이다.
정현수 정치부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