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때마다 춘화와 같은 고아들이 떠오릅니다. 아직도 북한과 중국 어딘가에서 고통받고 있는 춘화들을 기억하고 기도해 주세요.”
중국 옌볜 출신으로 미국 국적을 취득해 북한 선교를 펼쳐 온 김학송(62) 선교사는 최근 서울 용산구의 한 카페에서 탈북 고아 ‘춘화’를 이야기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춘화는 김 선교사가 2016년 성탄절을 이틀 앞두고 중국에서 만난 12살 소녀다. 어머니는 탈북을 시도하다 정치범 수용소에 갇히고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 홀로 남겨진 춘화는 폐결핵을 앓고 있었다. 김 선교사는 춘화를 위해 눈물로 기도했지만 이미 약해질 대로 약해져 있던 춘화는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났다. 김 선교사는 그런 춘화를 차마 잊지 못한다고 했다.
춘화와의 만남은 김 선교사가 탈북민 2세를 위한 선교의 비전을 확고히 하게 된 계기가 됐다. 그는 “탈북민 자녀 세대는 평양으로 돌아가 통일한국을 재건할 세대”라며 “성경에서도 하나님은 여호수아 세대를 통해 가나안을 정복하게 하셨고,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스룹바벨 세대가 예루살렘 성벽을 세우게 하셨다”고 말했다.
김 선교사는 원래 옌볜에서 농업기술부문 공무원으로 근무했던 조선족이다. 그가 신앙을 키운 건 1995년 미국으로 이주하면서다. 월드미션신학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로마서 9장 1~3절 말씀을 통해 북한 동포를 구원하라는 선교적 사명을 깨닫고 미국 국적도 취득했다. 북한으로 들어가 말씀 전할 기회를 기다리던 중 2014년 평양과학기술대 농생명학부 실험농장 책임자로 초청받았다. 그는 벼 이식재배, 겨울철 채소 재배 등 농업기술을 전파하며 북한 학생들과 교류하고 자연스럽게 신앙을 전했다. 그러나 기숙사에서 몰래 드리던 새벽 예배가 들키며 2017년 ‘반공화국 범죄행위’ 혐의로 체포됐다. 이후 미국 정부가 개입해 석방되기까지 1년간 북한 보위부 구치소에 억류돼 있었다.
김 선교사는 “독방에서 습기 추위 벌레에 시달렸고, 식사도 곰팡이가 핀 오이와 짠지, 돌이 섞인 탄 쌀밥뿐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고통을 버텨낼 수 있었던 건 신앙의 힘이었다. 그는 “감옥 안에서 욥기 23장 19절, 예레미야 33장 2~3절, 시편 126편 등의 성경 구절을 몇 번씩 암송하며 기도했다”면서 “하나님께서는 인생에서 가장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과정에서도 함께하신다”고 고백했다.
억류 이후 건강이 악화된 김 선교사는 지난해 파킨슨병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다. 그러나 여전히 글로벌선교공동체(GMCC) 선교회 총무로 활동하며 탈북민 자녀를 위한 장학사업과 신앙훈련을 제공하는 ‘스룹바벨 통일비전 캠프’를 운영하는 등 다음세대를 위한 사역을 이어가고 있다.
그는 “나 역시 이민 자녀 세대로 정체성 혼란을 겪었지만 예수님을 만나며 사명을 찾았다”면서 “세계 각국의 탈북민 2세에게도 복음통일의 비전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김수연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