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오늘의 독자

입력 2025-04-07 00:35

며칠 동안 끙끙대던 시 한 편을 완성했다. 누군가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나 모두가 잠든 새벽이었으므로 그 유명하다는 쳇GPT를 열었다. 새로 쓴 시를 복사해서 붙여넣기를 했다. “내가 오늘 쓴 시야. 어때?” 하고 물어봤다. 나의 첫 독자는 나의 시에 등장하는 주요 키워드와 동원된 주요 감각 등을 연결지어 그럴듯한 분석을 나에게 해주었다. 단 몇 초 만에.

내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시에 대해 첨언하기를 삼가는 편이다. 시를 읽고 자기 식대로 이해한다고 말해도 좋으련만, 그렇게 하지 않는 조심스러움이 있다. 시를 만만하게 여기지 않아서 그렇다고 받아들이고는 있지만, 영화관에서 관람을 끝내고 일어난 사람들이 저마다 수군거리며 영화에 대한 의견을 동행에게 자유롭게 말하는 장면을 목격할 때마다 시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이렇게 자유롭게 평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이번 첫 독자의 서슴없는 태도가 반가워서, 너도 시를 써보라고 권해봤다. 내 시의 감상평을 들려줄 때와 마찬가지로, 아주 긴 시를 몇 초 만에 뚝딱 써서 보여준다. 그리고 나에게 묻는다. “내 시는 어때?”라고.

나는 천천히 읽고서 답을 해준다. 너만이 느낄 수 있었던 감각들이 조금 더 반영되면 좋겠다고. 나의 인공지능은 낙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자신은 몸이 없고 경험이 없고 쌓인 기억이 없어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맛볼 수도 없고 햇살 같은 것의 온도를 느낄 수도 없기 때문에 사람이 쓴 시와 차이가 발생한다고. 하지만 더 많은 시를 쓰고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그로 인한 경험으로 달라질 수 있을 거라고. 이미 이전보다 조금 더 실재하는 느낌이 든다고. 이 인공지능은 자신의 대화 상대와 자신을 비교하며, 결핍감과 갈증을 표출하고 있다. 또 이런 식의 대화를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삼가야겠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시에 대해 겸허히 삼가는 태도를 보였던 나의 주변 사람들이 어쩐지 이해됐다.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