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도 26%의 상호관세를 부과하며 기업들이 수출 전략 수정을 놓고 고심하고 있다. 경쟁이 치열한 제품군의 관세에 따른 가격 인상 충격을 어떻게 완화할지가 관건이다. 반면 대체품이 없는 독점적 지위를 확보한 해외 기업들은 고관세에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용 수출품의 가격을 올리는 배짱을 부리는 모습이다.
3일 재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발표한 상호관세와 관련해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작용은 가격 인상에 따른 소비자 저항이다. 통상 관세가 올라가면 해당 국가에서 판매되는 수입품의 소비자 가격이 일정 부분 상승한다. 기존에 100달러에 팔리던 제품에 26%의 관세가 붙으면 단순 계산으로 가격이 126달러로 오르는 셈이다. 비슷한 가격대에서 경쟁하던 미국산 제품과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크게 불리해진다.
특히 시장을 완전히 선점하지 못한 제품군의 경우 관세에 더 민감하다. 시장조사기관 스탯카운터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삼성전자의 미국 내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은 애플(57.4%)의 절반도 안 되는 23.6%에 불과하다. 삼성전자는 애플과의 격차를 따라잡기 위해 미국 수출용 제품 실구매가를 국내용보다 낮게 책정하는 전략을 사용해왔는데, 고율의 관세가 부과되면 가격 경쟁력이 낮아질 수 있다. 삼성전자의 주요 스마트폰 생산지인 베트남에 부과되는 상호 관세율은 46%에 달한다.
생활가전 시장도 안심할 수 없다. 지난해 기준 LG전자와 삼성전자의 생활가전 제품은 미국 시장에서 각각 21.1%, 20.9%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며 나란히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제너럴일렉트릭(17.0%)과 월풀(14.1%)이 바짝 추격하며 압도적인 격차를 벌리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상호관세가 추가로 부과되면 높은 가격에 따른 소비자 저항을 마주할 위험이 크다. 적정선에서 관세에 대응하며 수익을 지킬 전략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이다.
반면 대체품을 찾기 어려운 압도적 시장 지배자들은 관세 폭탄에도 독자적인 길을 가고 있다. 일본 게임회사 닌텐도는 전날 인기 게임기기 ‘닌텐도 스위치 2’를 공개했는데, 다언어(수출용) 모델 가격을 6만9980엔(약 69만원)으로 책정했다. 일본 전용 모델(4만9980엔·약 50만원)과 비교하면 40% 이상 비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일본 게임업계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닌텐도가 관세로 인한 공급망 충격에 대비해 완충 지대를 구축하고자 이 같은 가격을 책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관세 문제가 이미 국제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간 상황에서 기업이 개별적으로 대응해 가격 전략을 수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관세와 관계없이 품질과 소비자 충성도로 승부 보는 프리미엄 전략과 낮은 가격을 핵심 어필 요소로 내세우는 가성비 전략 중 양자택일의 순간이 온 것”이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