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사회와 학계 원로들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선고를 하루 앞두고 ‘승복’과 ‘포용’을 누누이 강조했다. 자신의 기대와 다른 결과가 나오더라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받아들이는 게 민주주의 체제를 존중하는 것이란 의미다. 원로들은 무엇보다 정치권이 선고 결과로 승패를 나누기보다 서로 책임지는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3일 통화에서 승복과 절제의 미덕을 강조했다. 손 명예교수는 “절제는 성숙한 인간의 특징이다. 성경에서도 절제가 곧 사랑이라고 가르친다”며 “절제하면 타인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고, 길게 보면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고 말했다.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탄핵심판 선고를 민주주의가 성숙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낸 이정욱 대구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는 “헌재 판결을 많은 시민이 지켜보는 일 자체가 집단적으로 민주주의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라고 볼 수 있다”며 “광장에서 많은 시민이 정치적 의견을 표현하려는 열망이 있는 것은 민주주의가 성숙하는 계기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정치적 목소리를 내려는 광장의 열기가 불법·폭력 사태로 치닫는 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지낸 김상근 목사는 “헌재의 판결로 끝이 나는 게 아니다. 국민이 수용하는 과정을 거쳐야 최종적으로 결론이 나는 것”이라며 “누구나 이의제기를 할 수 있지만 반드시 법의 테두리 안에서 평화적으로 해야 된다”고 말했다.
헌재 헌법연구부장을 역임한 김승대 전 부산대 교수는 “민주주의 체제가 유지되려면 아무리 미운 상대라도 정치세력들 간에 타협과 조화가 이뤄져야 한다”며 “정치권에서 정파적 이익에 맞지 않는다고 국민을 선동하는 것은 입헌주의 헌법 체제에서 용납되지 않는다. 절대 있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헌재가 윤 대통령 탄핵심판을 선고할 때 사회 통합의 메시지를 강조해야 한다는 주문도 나왔다. 김 전 교수는 “헌재가 어느 쪽으로든 반드시 결론을 내야 한다. 우리 사회가 분열된 상황에서 사회 통합의 메시지를 함께 낸다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입헌민주주의가 굉장히 위태로운 상황에서 구성원들이 서로 타협하는 과정이 민주주의의 전제라는 취지의 메시지가 나오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여야 정치권을 향해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특히 정치권이 앞장서서 분열을 선동하지 말고 대화와 타협의 정치문화를 되살려야 한다는 당부가 쏟아졌다. 김선택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국론이 많이 분열돼 있는 만큼 선고 이후 시민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며 “정치인이나 책임 있는 이들이 국론 통합의 발언을 더 많이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헌재의 결론이 결코 승리와 패배를 나누는 일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한상진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선고 결과에 승리자와 패배자는 없다”며 “양 진영이 각자의 책임윤리에 따라 얼마나 더 책임을 지고 반성하느냐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산연구소 이사장인 박석무 우석대 석좌교수는 “갈등을 조정하고 화합을 이루기 위해 모든 정치적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용현 한웅희 윤예솔 기자 fa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