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일(현지시간) 전 세계를 상대로 상호관세를 부과하면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와의 후속 협상 결과에 국내 산업계의 명운이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관세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단절된 한·미 간 정상외교 회복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한국경제인협회(한경협) 주최로 3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 콘퍼런스센터에서 열린 ‘트럼프 상호관세,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은 상호관세 부과가 대미 협상의 서막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여한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우리가 13년째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파트너국이고 자동차, 반도체, 배터리 등 미국 내 산업에 중요한 기여를 해왔음에도 다소 높은 26%가 책정됐다”면서 “이는 협상의 시작점일 뿐 종착점은 아니다”고 말했다. 정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상호관세 발표는 시작에 불과하다”며 “이것은 국제 통상의 질서가 새롭게 변하는 대전환의 서막”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국내 주요 기업들은 미국이 발표한 관세율 자체보다 향후 국가별 협상에 주목하는 모습이다. 여전히 미국에 제조 기반이 부족한 수입품은 한국산 제품이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수입품끼리 경쟁하는 상황에서 미국과 각국 정부의 협상이 판을 좌우할 수밖에 없다. 철강업계의 경우 추가 상호관세 대상에서 빠진 데 일단 안도하면서도 일본 등 경쟁국보다 미국 시장에서 상대적 경쟁 우위를 가져갈 방안을 모색 중이다. 정부는 향후 협상을 통해 상호관세율 및 자동차·철강 등 품목별 관세율을 낮추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미국과의 개별 협상에서 국내 기술력이 월등한 조선·반도체 등을 지렛대 삼아 실익을 얻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재민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조선·방산·원전·액화천연가스(LNG)·반도체·철강 등 한국의 제조업 기반이 미국의 국가안보적 위기 상황 극복에 기여할 수 있음을 강조해 한국을 ‘스페셜 파트너’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 선임연구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민관 협력을 통해 협상력을 모으고 키워 미국에 임팩트 있는 카드를 내밀어야 한다”고 했다. 정 연구원장은 “한·미 관계의 특수성을 숫자로 잘 정리해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것은 물론 이를 스토리텔링 콘텐츠로 만들어 미국 업체와 업계에 제대로 전달해야 한다”며 “미국 정부, 의회, 주정부 대상의 아웃리치 활동과 싱크탱크 네트워크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의 정상 리더십 부재가 다른 국가에 비해 대미 협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의 의사결정이 대부분 하향식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그간 모든 실무 라인을 가동해 미국 당국자들과 접촉하며 비관세 장벽 등 오해를 충분히 풀었다고 내부적으로 판단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한국의 관세율이 미국보다 4배 높다는 등의 얘기를 한다”며 “정상외교 복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