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에 높은 수준의 상호관세를 부과하면서 통상 당국이 그간 펼쳐온 ‘물밑 협상’ 전략이 한계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국은 한국의 관세율이 미국의 4배에 이른다는 잘못된 주장도 바로잡지 못했다.
미 백악관의 2일(현지시간) 상호관세 관련 행정명령 부속서에 따르면 한국에 부과된 상호관세율 26%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20개 국가 중 가장 높다. 미국의 주요 무역 적자국 중에서도 상호관세 부과를 피한 캐나다·멕시코나 일본(24%)·유럽연합(20%)보다 관세율이 높은 중간 정도 위치다.
그동안 정부는 고위 통상 당국자의 미국 방문이나 실무 협의체 구성을 통한 ‘물밑 협상’에 주력해 왔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2월과 지난달 두 차례 미국을 찾아 관세율 결정에서의 ‘우호적 대우’와 민감국가 지정 해제를 요청했다. 이번 상호관세 발표 직후에도 통상 당국은 방미 카드를 다시 꺼내들었다. 안 장관은 3일 ‘민관 합동 대책회의’를 주재하고 “통상교섭본부장의 방미를 포함해 각급에서 긴밀한 대미 협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같은 전략은 효과를 내지 못했다. 국가 정상 주도로 대립과 타협을 오가면서 상호관세 적용 예외를 얻어낸 캐나다·멕시코와 비교하면 탄핵 정국으로 인한 리더십 부재가 뼈아프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되풀이되는 미국의 ‘오해’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미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사전 브리핑에서 한국의 최혜국대우(MFN) 관세율이 미국의 4배에 이른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오해 발언’을 재생산했다. 안 장관이 지난달 한국의 대미 평균 관세율은 0.79%에 불과함을 미 상무부에 전달했다는 설명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협상에서 정부의 리더십이 더욱 절실해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선임연구위원은 “이번에 (상호관세 발표를 통해) 어떻게 트럼프를 상대해야 하는지 교훈이 명확해졌다”며 “유명무실해진 ‘물밑 협상’ 전략 대신 공식 입장을 밝히고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이의재 기자, 워싱턴=임성수 특파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