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일(현지시간) 한국뿐 아니라 베트남과 인도 등 국내 기업의 핵심 생산기지에도 최고 46% 고율의 상호관세를 부과하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가 경영 전략을 재점검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반도체는 상호관세 미적용 대상에 포함됐지만 철강과 자동차처럼 품목별 관세 부과를 이미 예고한 만큼 추가 조치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3일 각 사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베트남에서 스마트폰과 TV, 모니터 등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베트남에서 생산하는 스마트폰 물량은 전체의 절반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는 베트남에서 생활가전 등을 생산 중이다. 인도와 중국도 이들 기업이 스마트폰과 냉장고, 에어컨, 모니터 등을 생산하는 주요 기지다. 이번 조치로 베트남과 인도는 각각 46%, 27%의 상호관세율을 적용받고, 중국은 기존 관세 20%에 더해 총 54%의 관세가 적용된다.
업계는 당장 생산량을 조정하는 등 조치에 나서기는 어렵다는 분위기다. 실제 관세가 발표한 수치대로 적용될지 확실하지 않은 데다, 이미 생산지별로 정해진 생산 물량을 소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만 국가별 관세율이 다른 만큼 전략적으로 생산지 운영 유연성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가전은 영업이익률이 낮은 편인 만큼 관세 부과는 최종 제품의 가격 인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미국 소비자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변화가 있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도체는 일단 상호관세 미적용 대상에 포함됐지만, 품목별 관세 부과 대상인 만큼 안도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반도체가 들어가는 가전, 스마트폰, 인공지능(AI) 서버 등 최종 제품에 부과되는 관세에 대한 간접적 영향도 불가피하다. 예를 들어 국내에서 제조된 메모리 반도체가 대만으로 수출돼 AI 서버로 조립되고, 이를 미국으로 수출하면 관세 부과 대상이 된다. 미국은 AI 서버의 주요 시장이지만 미국 내에서 조립되는 비중은 작기 때문에 관세가 부과될 경우 빅테크 기업들의 서버 구매 비용도 비싸진다.
일각에서는 반도체가 이번 발표에 빠진 것이 미국 기업들의 부담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엔비디아는 고대역폭메모리(HBM) 물량 대부분을 SK하이닉스로부터 받는다. 후발주자 마이크론 역시 미국 외 국가에서 생산하는 D램 물량이 90%를 넘는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미국 기업 대부분 반도체를 해외에서 들여오기 때문에 관세를 매기면 해당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게 된다”며 “관세보다는 미국 내 투자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협상 카드를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미국은 자국 내 반도체 공장을 세우는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다만 실질적으로 단기간 내 미국에 공장을 짓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도 여러모로 득실을 따진 뒤 반도체 분야의 추가적인 관세 정책을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심희정 나경연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