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시절 봤던 영화 ‘라쇼몽’을 최근 다시 보게 된 건 우연이었다. 어떤 알고리즘에 엮였는지 유튜브에 떴다. 비 오는 날, 라쇼몽 아래서 나무꾼과 승려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비를 피하다 우연히 둘의 이야기를 듣게 된 행인은 궁금증이 생겨 이들에게 다가간다. 둘은 방금 겪은 한 살인 사건을 들려준다. 한 무사가 아내와 함께 산길을 걷고 있다. 그때 도적이 나타나 무사를 포박한 뒤 그의 아내를 겁탈한다. 이후 나무꾼이 지나가다 가슴에 칼이 꽂혀 죽어 있는 무사를 발견한다. 나무꾼의 신고로 관청에서 사건 관련자인 도적과 피해자 아내를 불러 심문한다. 그러나 둘의 진술이 다르다. 이에 무당을 통해 죽은 사무라이 영혼의 진술까지 들어보지만 그 역시 앞선 둘과는 다른 얘길 한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이 진술하는 내용은 왜곡된 부분이 있다. 감독은 이를 여과 없이 드러내며 하나의 사건을 다르게 해석하는 주관의 민낯을 보여준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런 ‘라쇼몽 효과’(같은 사건을 두고 각자의 입장에 따라 사실을 달리 해석하는 현상)를 주변에서 쉽게 목격한다.
신념이든, 이념이든 자신의 필터(기준)를 끼운 채 세상을 바라보고 행동한다. 인지 부조화를 겪을지언정 자신의 것들을 그냥 밀고 가는 경우도 많다. 길거리에 붙은 현수막만 봐도 그렇다. 한쪽에선 내란수괴, 내란공범이라고 몰고 다른 한쪽에선 내란선동으로 몰아간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같으나 서로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은 다르다. 둘로 쪼개진 광화문광장이 그 축소판 아닌가.
물론 자신만의 기준을 갖는 건 중요하다. 그게 곧 가치관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니까. 기준이 없다면 남이 하는 말에 휘둘리거나 상황에 따라 태도가 오락가락할 수도 있다. 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기준이 얼마나 유연한지, 객관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있다고 본다. 자신의 기준이 너무 절대적이면 오히려 세상을 왜곡해서 볼 수 있다. 지난 1월 일어난 서울서부지법 폭동을 통해 절대적 신념이 가져온 폐해를 우리는 실감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서점가에서 헌법 관련 서적이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건 흥미로운 현상이다. 헌법이 이렇게까지 주목받은 시대가 있었던가. 업계에 따르면 헌법 관련서는 지난 12월 이후 판매가 급증하더니 1월에는 전년 동기 대비 13배나 폭증했다. 전문가를 위한 헌법 연구 서적보다 일반인을 위한 헌법 사용설명서에 더욱 관심이 높았다. 헌법 전문을 직접 따라 써보는 사람들도 크게 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왜 헌법을 찾아 읽기 시작했을까. 서울의 한 대학 교수는 사회적으로 혼란이 클 때 사람들은 뭔가 확실한 기준을 찾으려고 한다며 헌법을 통해 삶의 중심 잡기를 원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각자의 해석을 넘어 보다 공통된 언어를 찾으려는 시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사람들이 자기 기준의 객관성을 찾으려는 노력 중 하나라는 해석도 곁들였다.
공감이 갔다. 법이라는 건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최소한 장치인데 지금의 시대는 그것조차도 각자의 기호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있지 않나. 탄핵심판 선고가 코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여론조사 기관이 만 18세 이상 남녀 100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44%는 ‘내 생각과 다르면 수용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수용하겠다’고 답한 이는 절반에 불과했다. 기호가 기준이 돼 버린 상황에서 사람들은 법을 직접 읽으며 ‘우리가 같은 기준을 공유하고 있는가’를 확인하고 싶은 게 아닐까 싶다.
황인호 경제부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