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해석입니다. 신앙도 해석입니다. 삶의 건강한 해석이 삶의 내용을 바꾸듯 신앙도 해석 방법에 따라 그 내용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요 5:16) 이 구절에서 ‘이러한 일’은 단수가 아닌 복수의 의미로 쓰였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의도적 행위로 이해됩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신앙의 본질, 예배의 본질, 기도의 본질을 말씀하셨습니다. 또 헌금과 봉사의 본질, 율법의 본질, 안식일의 본질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유대인들의 안식일 논쟁은 근본적으로 복음과 유대주의에 부딪힘이었습니다.
유대주의는 유대이즘입니다. 믿음이 사상이 되면 자기주장이 되고 곧 자기 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된 믿음은 그리스도 예수를 바라보는 것이요 오직 그분만이 우리를 온전케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율법은 하나님 백성들의 신앙 본질이기에 그것을 지키고 행할 때 복이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율법을 스스로 자기들의 신념과 행위로 주장하면서 율법주의자가 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경건은 이생과 내세에도 유익함이 있다고 성경은 가르쳐 줍니다. 그러나 그 경건이 자기 신앙의 고집이 되고 자랑이 되면 경건주의가 됩니다. 한국교회의 부흥은 경건 운동에서 시작했으나 그 경건 운동이 경건주의가 될 때 교회는 분파주의가 형성됐고 분열의 원인이 됐습니다. 이는 한국교회의 이단 분파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고전 1:12)
게바파는 유대주의 추종자들인 유대파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이 고린도 교회의 분파 신앙을 만들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이유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선포했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18절은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합니다. 교회가 신앙의 본질을 잃어버리면 생명을 잃고 큰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이 땅에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분명합니다.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며 그 생명을 더 풍성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요한일서 5장 12절은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참 생명, 영원한 생명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음은 생명을 살리는 능력입니다. 복음 전파의 목적은 생명을 살리는 데 있습니다. 교회의 사명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며 교회의 본질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먹든지 마시든지 오직 주의 영광을 위해 행해야 합니다. 주의 영광을 위해 하는 일이 곧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사명이요 교회의 본질입니다.
라양오 여수 주향교회 목사
◇전남 여수 주향교회는 1923년 순교자 조상학 목사의 전도로 시작돼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1950년 9월 28일 손양원 목사와 함께 순교하신 조 목사의 순교 정신을 계승하며 민족과 시대 앞에 거룩한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