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입력 2025-04-05 00:38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맹렬한 산불이 교회만 피해 가는 일은 없었다. 미얀마를 강타한 지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떤 종교 시설도 예외가 없었다. 황금빛 사찰은 무너졌고 라마단 금식월에 기도하던 사람들은 사원에서 나오지 못했다. 한국 선교사들도 당했다. 선교센터가 무너지고 수십 명이 피해를 봤다. 무심한 하나님, 전지전능한 그분은 당신의 권능으로 사람들을 살려줄 수는 없었을까.

종교 유무를 떠나 인간은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재난이 닥치면 누군가를 원망하는가 보다. 하나님 같은 존재는, 유한한 인간이 실컷 비난하고 싶은 손쉬운 대상일지도 모른다. 왜 세상을 만드신 이가 가만있냐고. 왜 당신이 창조한 세상이 파괴되고 인간을 죽게 내버려두냐고.

2000년 전 로마제국 식민지였던 유대 땅에서도 그랬다.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던 나사렛 예수는 골고다 언덕의 끔찍한 사형 틀에 달려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하나님도 무심한 것 같았다. 가시 면류관을 쓰고 피를 흘리던 그에게 사람들은 외쳤다. “당신 자신이나 구원해 봐. 하나님 아들이라면 말이야.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고!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라지! 그러면 우리가 믿을 텐데.”(마 28:40~42, 새한글성경)

3년간 스승을 따랐던 어부 출신 제자들도 그랬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제자들은 그들의 선생이 유대 민족을 해방하고 로마제국을 전복시킬 메시아로 믿었다. 하지만 예수는 순순히 체포됐고 신속하게 사형 판결을 받아 극형에 처해졌다. 당황한 제자들은 도망쳤다. 제자들은 어쩌면 시편 말씀이 기억났을 것이다. “주님, 어찌하여 주님께서는 그리도 멀리 계십니까. 어찌하여 우리가 고난을 받을 때에 숨어 계십니까. 악인은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고 말합니다.”(시 10:1~4, 새번역)

예수는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린 채 십자가에서 서서히 숨져갔다.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에도 군단급 천사 병력을 출동시키지 않았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행한 기적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전능한 주님은 없었다. 오히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를 외치며 한탄했다.

하지만 예수는 거기서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다 이루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또 다른 십자가에 매달린 한 죄수를 향해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했다. 예수는 이렇게 인간과 함께했다. 숨이 멎는 순간까지도 임마누엘이란 이름에 충실했다.

이번 산불로 교회와 사택을 잃은 경북 영덕 빛과소금교회 최병진 목사는 놀라운 고백을 했다. “모든 것이 다 타버렸지만 하나님 한 분으로 감사하겠습니다.” 폐허로 변한 교회와 집을 본 최 목사의 아내는 주저앉아 울었다. 최 목사도 같은 심정이었지만 차마 무너질 수 없었다. 그는 “걱정하지 말자”고, “하나님이 더 좋게 하실 것”이라고 위로했다고 한다.

최 목사의 수난은 처음이 아니었다. 2018년에는 태풍으로 수해를 입었다. 그런데 이번엔 산불이 닥쳐 모든 것을 앗아갔다. 최 목사는 과거 수해가 닥칠 때마다 그의 부친이 보여준 신앙으로 이겨냈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40년 이상 교회를 섬긴 목회자로, 2005년 태풍 ‘나비’가 닥쳤을 때는 찬송가를 부르며 기도했다고 한다. 그런 부친을 지켜본 최 목사 역시 그때 아버지가 부른 찬송을 이번에도 불렀다고 한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기원전 7세기 유다왕국에서 활동하던 예언자 하박국도 비슷한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의 정의는 보이지 않았고 바벨론 침입이 임박했던 시절이었다. “무화과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을지라도, 올리브 나무에서 딸 것이 없고 밭에서 거두어들일 것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주님 안에서 즐거워하련다.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련다.”(3:17, 새번역)

곧 부활절이다. 임마누엘 예수는 우리의 상황과 관계없이 함께하신다.

신상목 종교국 부국장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