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방] 불완전한 독자의 대피소

입력 2025-04-05 00:30

일본 나라현 히가시요시노무라에는 인구 1700명이 산다. 숲속 삼나무 오솔길을 걸어가면 이곳에서 ‘루차 리브로(Lucha Libro)’를 만날 수 있다.

전직 사서였던 아오키 미아코는 직장의 인간관계에 좌절해 입원할 정도로 몸과 마음이 망가졌다. 결국 지중해 연구자인 남편과 숲속의 오래된 집으로 이사했고, 거실을 사설 인문 도서관으로 개방했다.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도서관을 시작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달라졌다. 아오키 미아코가 도서관을 찾는 사람들이 겪는 인생의 과제를 돕고 치유하게 된 것이다. ‘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에 담긴 ‘루차 리브로’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동네책방의 존재 이유와 겹쳐 보였다. 상식이 무너진 불안 사회에서 우리는 더 빠르고 생산적인 것 말고 다른 게 필요하다. 돌봄과 회복이다.

한남동 블루도어북스, 연남동 피프티북스, 해방촌 고요서사, 구로동 책방공책, 부산 씨씨윗북, 누하동 일인용1p 등은 공통점이 있다. 예약제 유료 서점이다. 물론 책방 사정에 따라 사용 방법은 다르다. 어쨌거나 독자는 시간제 혹은 단독으로 서점을 이용할 수 있고, 1~2시간의 공간 이용료는 대략 2만원 선이다.

서점은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 있는 곳이다. 책을 사지 않아도 진열된 책을 마음껏 볼 수 있다. 그러니 이런 유료 서점은 근대적 책방의 개념을 역행한다.

서점의 공간 유료화는 일종의 실험이다. 책이 덜 팔리니 서점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수익원이 필요하다. 책 판매와 더불어 서점 공간 대여는 우리 시대 책방의 대안이다. 그렇다면 독자는 왜 구태여 돈을 내고 책방에 가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나만의 시간을 온전히 만끽하기 위해서다. 자본주의와 시스템에 지배받지 않고 두 발을 땅에 딛고 서 있다는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서점 공간은 그러니 ‘루차 리브로’처럼 피난소라 할 만하다.

결혼과 육아와 일이라는 삼중고에 치여 한순간도 나로 존재하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간절히 바란 것은 혼자 있는 공간이었다. 잠시라도 고요 속에 머물면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혼자 있는 공간을 찾다 친구에게 반나절만 방을 빌려 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었다.

한 시간만 집중해서 책을 읽고 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얼굴이 밝아진다. 집중해 읽기는 그 자체로 나를 돌보고 치유하는 시간이다. 유료 서점 이용은 그럴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사는 일이다.

‘나는 숲속 도서관의 사서입니다’의 원제는 ‘불완전한 사서’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 ‘바벨의 도서관’에서 빌려 왔다. 아오키 미아코는 정신질환을 앓으며 치유와 회복을 돕다니 자신이야말로 불완전한 사서라고 생각한 듯하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독자’다. 책과 일대일로 만날 수 있는 시간에야 비로소 ‘남들보다 느리고 볼품 없어도 내게 흐르는 고유한 시간을 느낄’ 수 있는 불완전한 독자다.

한미화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