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우리 삶의 밝고 축복된 장이었습니다. 우리는 슬픔 속에서도 이를 기쁨으로 회상하며 이야기합니다.”
1911년 폐결핵에 걸려 생사를 오가는 아내의 치료차 한국을 떠나며 미국인 선교사 존 Z 무어(1874~1963)가 미국 선교부에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이다. 아내는 결국 별세했지만 무어 선교사는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평양과 서울에서 40년 넘게 활동하며 160여개 교회와 30여개 학교를 세운다.
무어 선교사가 남긴 한국 선교의 생생한 증언이 선교 140주년을 맞은 2025년 세상 밖으로 나왔다. 2일 서울 광성중·고등학교에서 열린 개교 131주년 기념행사에서 광성학원은 ‘존 무어 자료집’ 1·2권을 처음 공개했다. 학교의 실질적 설립자인 무어 선교사가 남긴 서신을 복원하고 번역한 결과물이다.
광성학원은 지난해 개교 130주년을 맞아 미국 뉴저지주 드루대학교 연합감리교 역사자료관에서 원본 서신을 발굴했다. 수신자는 북감리회 선교부의 AB 레너드 박사, HK 캐럴 박사 등으로, 서신 대부분은 1902~1914년 작성됐다. 광성학원 측은 필기체로 된 편지를 해독해 한영 대역으로 정리했다. 전체 4권 중 이번에 1·2권을 발간했고, 3·4권은 2026년 출간할 예정이다.
2000쪽에 달하는 서신에는 “우리가 이 땅에서 물러설 수는 없다”며 후원과 인력 파견을 요청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교사가 부족하다” “학생들이 책 없이 공부한다”는 절박한 보고가 반복된다. 한국의 변화에 대한 놀라운 긍정도 담겨 있다. 1914년 12월 선교부에 남긴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한국은 새로운 나라입니다. 신자들은 6년 전보다 더 놀랍고 생명력이 넘칩니다. 서울에서는 1906~1907년보다 더 강한 부흥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기회를 앞두고 우리가 사역지를 포기하고 일을 줄이고 선교사를 돌려보낼 수 있습니까.”
자료집 번역을 맡은 소요한 감신대 교수는 “무어 선교사에 대한 학문적 연구는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며 “이번 자료집은 광성학원의 역사는 물론 평양지역 선교와 한국 감리교 형성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라고 의미를 짚었다.
광성학원은 이날 기념예배를 드리고 ‘광성130년사’를 함께 헌정했다. 김신원 교목은 “광성의 시작은 사랑방 교실이었지만 그 뜻은 오늘에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진 역사전시실 개관식에서는 무어의 서신 원본, 평양 시절 학교 자료, 초기 교재, 사진 등이 공개됐다.
3일에는 광성고 학생들이 도보대회에 참가해 무어의 개척정신을 기린다. 최준수 광성학원 이사장은 “우리가 받은 복음의 빛과 그 전파의 통로였던 선교사들의 헌신을 다시 조명해야 할 때”라며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나누는 기독교 사학의 정체성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글·사진=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