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옥의 컬처 아이] 기적의 방염포?… 설치 지침도 없었다

입력 2025-04-03 00:38

사상 최악의 산불로 문화유산의 피해도 컸다. 천년 고찰인 경북 의성의 고운사에서는 목조 건축물 연수전과 가운루 등 보물 2점이 소실됐다. 화마가 고운사를 삼킨 그날 현장을 찾아 방염포로 싼 석조여래좌상(보물)을 어루만지는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을 찍은 사진은 유물을 지키려 현장에 달려간 수장의 이미지로 유통됐다.

강원도 동해안 지역을 휩쓴 대형 산불로 양양 낙산사의 목조 건물은 물론 낙산사 동종(보물)까지 녹아내리는 장면을 속수무책 지켜본 게 2005년이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고운사의 두 보물은 지켜질 수 없었을까. 불가항력이었을까.

드라마 ‘미스터션샤인’ 촬영지로 잘 알려진 경북 안동시 길안면의 누각 ‘만휴정’(경상북도 문화유산)을 1000도 화마로부터 지킨 ‘기적’을 낳았다는 방염포(방염천)는 고운사 연수전도 감쌌지만 통하지 않았다. 고운사 관계자는 “나무가 뽑혀나가는 강풍이 불었다. 연수전 방염포도 날아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성에서 발화한 영남 산불은 안동, 영덕 등지로 동진해 국가유산 지키기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안동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하회마을, 병산서원, 봉정사 등 특급 문화유산이 집결돼 있다. 현판과 회화, 석불 등 이송 가능한 유물은 대피시켰다.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등에는 살수차가 대기하며 물을 뿌렸다. 봉정사에는 ‘제2의 기적’을 바라듯 방염포가 활용됐다.

과연 기적의 천이었을까. 김동현 전주대 소방안전공학과 교수에 따르면 방염포는 성능에 따라 난연(難燃) 1, 2, 3급으로 나뉜다. 1급은 불연재인 돌을 사용하고, 2급은 준불연재를 사용해 1000도까지 견딘다. 3급은 500도 정도 견딘다. 또 난연 성분 중 유리섬유는 호흡기 및 피부 질환을 일으키므로 사용해선 안 된다.

산불 방지 작업을 한 국가유산돌봄센터 관계자는 “우리는 1, 2, 3급 그런 거 모른다. 노란색, 회색 두 가지가 있는데 노란색은 일반용, 회색은 용접용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그는 “봉정사 건물은 있는 대로 다 쳤고 어느 게 더 효과가 있었는지 모른다”면서도 “방염포가 유리섬유로 돼 있어 작업이 끝난 뒤 가시 같은 유리가 옷에 묻고, 몸에 들어가면서 간지러워 고생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가유산청의 방염포 설치 지침이 없다 보니 현장에서는 일단 치고 보자 식 대응이 이뤄지고 있었던 것이다. 만휴정 방염포도 색상으로 볼 때 3급이라 실제 불이 났을 때 효과가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번 산불 대응에서 국가유산청은 이례적으로 선제적인 대응을 했다. 봉정사의 경우 국보인 극락전과 대웅전 등 목조 건축물 주변 20m 이내 나무를 벌채했다. 병산서원과 도산서원은 뒤편 소나무를 벌채했다. 현행 규정에는 없는 일이다. 위기 상황이라 ‘산불 재난상황 종료 시 국가유산청의 사후 승인을 받도록’ 한 것이다.

낙산사 산불 이후 목조 건축물 주변 나무를 베어 숲과 건물 사이 거리를 확보하게 했다. 하지만 이는 의무가 아니라 권고사항일 뿐이다. 국가유산청 관계자는 “나무는 사찰 경관을 형성하는 주요한 요소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전북 고창 선운사의 경우 산불 예방을 위해 내화수림용으로 사찰과 숲 사이에 차밭과 동백나무숲을 만들었다. 경관을 해치는 게 아니라 브랜드가 됐다.

낙산사 화재 이후 산림청에서 360도 회전하며 물을 뿌리는 전봇대형 스프링클러(수관수막설비 타워)를 제작해 보급 중이다. 하지만 고운사, 봉정사, 병산서원 등 어디에도 이 장비는 없었다. 방염천보다 더 확실한 장비였지만 말이다. 기후 위기로 대형 산불 가능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기준도 마련하지 못한 방염포 홍보가 아니라 무얼 안 했는지 반성문부터 써야 한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