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 지역을 강타한 산불에 모두가 망연자실했다. 압도적인 규모에 ‘산불’이라는 말 자체가 너무나 초라하게 느껴진다. ‘메가파이어’로 불리는 초대형 산불은 이미 전 세계를 짓누르는 재앙이 돼 있다. 초대형 산불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을까. 책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해결책을 모색한다.
프랑스 엑스마르세유 대학의 철학 교수인 저자는 자연을 바라보는 두 가지 궁극적인 ‘이상(理想)’의 극단적인 이분법을 메가파이어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바라보고 있다. 하나는 ‘우리의 필요와 예측에 순순히 따르는 인간 지배하의 자연’이라는 이상, 다른 하나는 ‘멀리서 인간으로부터 경외 받고 관조되는 순수한 자연’이라는 이상이다. 저자는 “초대형 산불은 일종의 비상벨처럼 작용하며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지탱하는 이러한 이분법적 구조를 우스꽝스럽게 만든다”면서 “열렬한 개입주의도, 생태학의 주요 흐름 중 하나인 보존주의의 신념도 메가파이어를 제압하지 못하며, 심지어는 이해조차 못 함으로써 아무런 정답을 내놓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또 불에 대한, 그동안 인류가 갖고 있던 두 가지 믿음도 산산조각이 났다고 진단한다. 하나는 대형 산불도 현대 기술과 과학을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다른 하나는 산불은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이며 생물 다양성에 이롭다는 믿음이다. 저자는 “(초대형 산불) 사건의 난폭하고 갑작스러운 성질 앞에서,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는 약속이나 그와 반대로 우리를 편안하게 해 주고 심지어 낭만적이기까지 한 자연주의 철학자들의 주장은 신뢰성과 타당성을 잃는다”고 말한다.
한동안 산불은 “정상적인” 것이고 자연환경의 균형을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거나, 산불이 “살인 괴물”이 아니라, 숲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숲 생태 주기의 일부를 이룬다는 주장과 인식이 있었다. 과거에는 참이었다.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산불은 숲의 밀도가 높아지는 것을 방지하고, 바닥에서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건조한 물질 더미를 점진적으로 제거한다. 또한 식물 간의 경쟁을 조정할 뿐만 아니라 씨앗을 퍼뜨리고 유기물을 분해하며 토양을 비옥하게 해 주기도 한다. 덕분에 숲은 끊임없이 재생될 수 있다. 하지만 메가파이어 앞에서 이러한 주장은 설 자리를 잃은 듯하다.
불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은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최근 ‘불 산업 복합체’의 형태를 띤다. 전쟁 무기를 방불케 하는 진압 장비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예방에는 상대적으로 소홀하다. 저자는 “불 산업 복합체의 가치는 수십억 달러 규모에 달한다”면서 “환경 보호나 안전을 위해서라기보다는 경제적 이익의 논리에 따라 개발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구글에서 ‘megafire(메가파이어)’를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은 같은 이름의 소화기 브랜드 홈페이지다. 저자는 “메가파이어를 제어하려는 시도는 마치 폭발하는 화산 위에 뚜껑을 덮으려는 것만큼이나 헛된 일”이라고 말한다. 1989년 미국 옐로스톤 화재를 진압한 것은 1만명의 소방관이 아닌 ‘눈’이었다. 2018년 캘리포니아 화재를 진압한 것도 역시 ‘비’였다.
저자는 과감하게 ‘통제된 불’로 상징되는, 인류와 함께해 온 ‘불의 문화’에 주목한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의도적으로 자연에 불을 질렀다. 버팔로를 유인하기 위해 특정 지역에 불을 질러 잡초가 자라게 하거나 열매나 과일, 꽃이 햇빛을 더 잘 받아 쉽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왔다. 호주 원주민들도 의도적으로 불을 사용해 주변 환경을 조성하고 보호했다. 이러한 통제된 불은 단순히 사냥이나 요리, 농사를 돕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형 산불을 막는 데도 기여했다. 건조한 물질을 정기적이고 계획적으로 불로 태워, 불에 탄 구역과 그렇지 않은 구역을 모자이크처럼 만들었다. 화재의 예방과 방어라는 목적에서 불은 서로 보완했다. 또 대형 산불이 발생했을 때는 사람과 동물이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이 됐다. 저자는 “우리가 알고 영위하는 자연은 인간이 일으킨 불에 의해 형성됐을 것”이라며 “인간이 자연에 의존하는 것처럼 자연도 인간에 의존한다.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이 줄어들수록 산불의 위험성은 커진다”고 말한다.
저자는 자연이 “내버려 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유지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면서 자연을 ‘경관’의 개념으로 전환시킬 것을 주장한다. 그동안 인류가 함께 살아온 것은 ‘원시적인 자연’이 아니라 인간과의 상호작용을 탄생한 ‘경관’이었다. 화재 현장에서 많은 피해자들이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는 것은 상실감 때문이다. 불로 사라진 것은 단순한 자연이 아니라 그들과 주고받으며 관계를 맺어왔던 ‘경관’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메가파이어 앞에서 “통제 사회라는 이상, 또는 반대로 완전한 원형이라는 이상을 통해 만들어진 우리의 습관들은 더 이상 활동할 수 있는 기반을 찾지 못한다”면서 ‘불의 문화’를 되찾아서 한다고 주장한다. “지속 가능한 문명에 적합한 방식으로 불을 다루고 땅을 경작해 돌보며, 물질적·정신적 양식을 생산하는 행위 사이의 동맹을 되살려야 한다. 메가파이어에 대응한다는 것은 문명을 하나의 문화로 사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세·줄·평 ★ ★ ★
·초대형 산불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불이 진압의 대상일 뿐이라는 통념에 대한 반박이다
·철학적 에세이라는 점을 감안하자(명쾌하진 않다)
·초대형 산불의 근본적 원인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불이 진압의 대상일 뿐이라는 통념에 대한 반박이다
·철학적 에세이라는 점을 감안하자(명쾌하진 않다)
맹경환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