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당신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

입력 2025-04-03 00:38

지난 2월과 3월 배우 김새론과 가수 휘성이 세상을 떠났다. 지인과 팬들의 추모행렬이 이어졌다. 딱 거기까지만 같았다.

휘성의 유족들은 장례를 마치고 조의금을 전액 기부하기로 했다. 기부금은 고인의 이름으로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곳에 사용될 것이라고 했다. 휘성의 동생은 또 형의 음악이 앞으로도 잊히지 않기를 바라며 가족들이 그의 작품을 지켜나갈 것이라고도 전했다. 아깝고 비극적인 죽음이었지만 떠난 뒤의 모습은 팬들의 가슴속에 아름다움으로 남아 있다. 김새론의 죽음 이후 한때 실수를 붙잡아 영원히 사회에서 매장하고 재기의 싹을 자르려는 대중의 태도와 언론의 행태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잠깐이지만 나왔다. 고인의 죽음을 헛되게 하지 않을 기회였다. 하지만 이내 유족들이 배우 김수현과 미성년자 시절 김새론의 교제 사실을 주장하며 폭로전이 시작됐다. 김수현도 법적 대응에 나서 싸움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김새론은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고 있을 거 같다.

두 사람의 죽음 이후는 왜 다른 걸까. 한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그들의 죽음의 ‘방식’이 달랐던 것이 이유일 수도 있겠다는 추측을 하게 됐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느냐 아니냐의 차이 말이다.

막연한 추측은 ‘자살의 언어’를 뒤적이다 확신 비슷한 것으로 이어졌다. 자살로 인한 죽음을 20여년간 연구한 스웨덴 정신과 의사가 삶과 죽음의 문제를 다룬 책이다. 책의 한 부분은 ‘남은 자들의 죄책감’을 다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의 가족과 지인들은 고인이 발신하는 죽음의 신호를 알아차렸다면 죽음을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대부분 괴로워한다고 한다. 죄책감은 죽음의 억울함을 강화해 스스로를 자책할 수도 있고,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아 그 억울함을 풀어주려고 할 수도 있다.

책에는 영국의 소설가 버지니아 울프의 죽음이 나온다. 버지니아는 1941년 3월, 점심 전에 영국 남부의 차디찬 우즈강에 몸을 던졌다. 그녀는 오전에 글을 쓰고 있었고 그 모습을 남편 레너드도 봤다. 레너드는 그게 마지막 작별 편지였다는 걸 알지 못했다. 편지에는 집중할 수도, 읽을 수도, 제대로 쓸 수도 없다는 하소연이 나온다. 우울증 증상들이다. 하지만 편지의 진짜 목적은 모든 것이 떠났지만 남편의 다정함만은 남았다는 부분에 담겨 있다. 자신은 죽음을 향해가고 있지만 남아 있는 이의 죄책감을 걱정하고 보호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레너드는 죄책감을 느꼈다. 버지니아를 병원에 데려갔어야 했다고 말이다.

많은 전문가는 자살의 징후가 있다고 말한다. 죽고 싶다는 직접적 표현을 하거나 평소와는 다르게 과음을 하고, 잠을 못 자기도 하고, 심각한 이별을 겪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징후가 반드시 자살로 이어지지는 않고, 실제 자살로 이어진다고 해도 알아차릴 겨를도 없다. 책에는 자살 시도 생존자를 인터뷰한 연구 결과가 나온다. 3분의 1가량은 대체로 자살 시도 1시간 전에 목숨을 끊겠다는 생각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남은 사람들은 경고 신호를 미리 알았다면 자살을 막을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심지어 의사들도 말이다. 영국에서 자살 사망자의 85%는 보건 인력과 마지막으로 접촉했을 때 ‘단기적’으로 자살 위험이 낮다는 진단을 받았고, 59%는 ‘장기적’으로도 위험이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 책은 “당신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놓치지 않았다. 당신은 당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 앞으로 많은 유족이 이 말부터 우선 새겨야 한다.

맹경환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