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산불, 비만 기다려서야

입력 2025-04-03 00:35

지난달 영남 지역을 불태운 산불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사망자 31명을 포함해 모두 75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산불 피해 영향구역은 총 4만8000여㏊로 추산됐다. 산림청이 산불 관련 인명 피해·산림 피해 면적 통계를 낸 이래 사상 최다 수치였다. 이번 사건을 통해 많은 전문가들은 이제 우리나라 산불이 통제를 넘어서는 규모로 대형화됐고, 발생 주기도 짧아지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또 하나 살펴볼 점은 인간은 자연 앞에 무력한 존재라는 것이다. 이번 영남 산불은 건조한 날씨와 함께 엄청난 강풍이 불어 빠르게 확산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경북을 중심으로 큰 피해를 낸 경북 의성 산불은 건조한 대기와 태풍급 강풍으로 2㎞나 먼 곳까지 불꽃이 날아갔다.

확산 속도가 시간당 8㎞를 웃돌면서 단 몇 시간 만에 의성, 청송, 영덕을 넘어 동해안 바다의 어선까지 불태웠다. 시간당 8㎞의 확산세는 사람이 뛰어가는 것보다 빠른 속도라고 한다. 그렇다 보니 화마를 피해 도로를 달리다 차에 불이 붙어 일가족이 사망하는 사례도 있었다.

산불 진화도 속수무책이었다. 수많은 진화대원과 소방대원이 동원돼 진압을 시도했지만 산불은 일주일 넘게 확산 일로를 걸었다. 이번 영남 산불도 비만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그런데 지난달 28일 밤과 새벽 진화 작업 중인 5개 시·군에 1㎜ 안팎의 비가 내렸다. 당시 이 정도 비가 무슨 도움을 줄까 반신반의하는 사람이 많았지만 산불 상황은 일주일 만에 반전됐다. 비록 적은 양의 비였지만 불똥이 날아가 번지는 비산화 위험을 낮췄고, 진화 헬기 운용에 장애로 작용하던 연무를 제어하는 효과로 이어져 주불 진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사실상 아무리 노력해도 엄청나게 확대된 산불을 끄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는 주요 선진국도 마찬가지다. 매년 미국과 캐나다에선 대형 산불이 발생해 엄청난 장비와 인력을 동원하지만 정작 불을 끄는 데 많게는 수개월이 걸린다.

따라서 산불 관리에 대한 패러다임이 진화에서 예방으로 바뀌어야 한다. 우선 건조한 시기인 봄과 가을에 산불 감시를 철저히 해야 한다. 이번 영남 산불은 크게 지역별로 산청, 의성, 울주 산불이 확대돼 수많은 임야를 태웠다.

그런데 이 세 곳 모두 작은 실수가 걷잡을 수 없는 대형 산불로 이어졌다. 산림청에 따르면 입산자·성묘객 실화, 소각, 담뱃불 실화 등 부주의가 대형 화재로 번지는 경우가 전체 산불의 3분의 2에 달한다.

자연에 손을 대는 것은 무조건 나쁘다는 과거 인식도 바꿔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우리는 죽은 나무, 즉 사목(死木)도 생태계의 일부분이라고 무턱대고 놔두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사목은 불이 붙을 경우 대형 산불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산불이 난 곳에 산불에 약한 침엽수 대신 활엽수를 심는 수목종 변경도 필요하다.

산불이 난 이후엔 마을순찰대와 같은 마을 공동체의 역할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산불 당시 발화지였던 의성은 지방자치단체가 재난안전문자 등을 통해 대피 명령을 발령하기도 전에 마을순찰대 안내에 따라 이미 주민 2000여명이 대피한 상태였다.

덕분에 의성군은 이번 영남 산불에서 가장 많은 면적이 탔지만 인명 피해는 가장 적었다. 마을 공동체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영덕, 영양과는 대조를 이뤘다. 마을순찰대는 천만다행으로 불과 화재 9개월 전인 지난해 6월 만들어졌다고 한다. 화마는 모든 것을 태우고 갔다. 부디 다시는 같은 재난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모규엽 사회2부장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