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K방산도 때리는 트럼프

입력 2025-04-03 00:40

핀란드는 1992년 미국 맥도널 더글러스사로부터 FA-18 전투기 64대를 30억 달러에 샀다. 핀란드는 지급액 일부를 순록 고기로 제공하고 미 시장에 판매토록 요청했다. 판매가 부진하자 맥도널 더글러스 구내식당에서 주로 소비됐다 한다. 2000년대 초 태국은 신형 전투기를 구입하기로 했다. 하지만 외환위기 직후로 구매 여력이 없자 수출품인 닭과의 물물교환을 추진했다. 가까스로 스웨덴과 계약을 체결했다. 최신 전투기 JAS-39 6대에 냉동 닭 8만t 제공이 조건이었다.

절충교역은 외국에 무기 등을 판매할 때 반대급부로 수입국 요구를 일부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통상 기술이전, 부품 제작 등이 해당되나 곳간 사정이 여의치 않는 국가들은 위 사례들처럼 물물교환을 선호하곤 한다. 중국은 90년대 러시아 수호이 전투기를 구매할 때 라면, 돼지 수천t을 보냈고 아르헨티나는 2015년 수호이 전투기 12대를 빌리면서 러시아에 소고기를 임차료 명목으로 내놨다.

83년 절충교역 제도를 도입한 우리나라는 정공법을 택했다. 무기 거래의 경우 91년 미국 록히드마틴과 전투기 F-16 구매 계약을 맺으며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 설계 기술을 익힌 게 시초였다. 2002년 8월 20일 경남 사천 비행장에서 T-50이 첫 비행에 성공하자 한국항공우주산업(KAI) 경영진과 개발자들이 부둥켜안고 환호했다. 한국은 주로 동맹 미국과의 무기 수입과 절충교역에 힘입어 어느덧 세계 10대 무기수출국으로 올라섰다. ‘저비용-고효율’ K방산 신화의 토대였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지난 1일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절충교역을 비관세 장벽 리스트에 처음 올렸다. 30년 이상 이어져 왔음에도 기술이전이 부당하다는 얘기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바탕으로 상호관세를 매길 태세다. 자기들 무기 구입하고 절충교역에 따른 기술력 확보로 한국의 국방이 튼튼해지면 동맹으로서 윈윈 아닌가. 기술이전 대신 닭·돼지고기를 받아야 만족할 건가. 세계 최강국의 좀스런 모습이 씁쓸할 따름이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