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유성구 골목길에 있는 회색 컨테이너 건물. 약 67㎡(20여평) 크기의 창고형 사무실을 들어서니 대형 윷놀이 세트, 투호용 창, 제기 등 전통 놀이도구와 이인삼각용 고리, 팀별 조끼 등 각종 레크리에이션 도구가 눈에 들어왔다. 지난달 24일 대전 사무실에서 만난 ‘MC1호’ 최일호(41) 소나기컴퍼니(SNG Company) 대표는 이곳을 “단순한 사무실이 아닌 여러 사람이 즐기고 교류하고 한마음이 되는 행사를 준비하는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왕따·관심병사 경험 디딤돌로
“잊고 싶었던 기억, 꺼내고 싶지 않았던 기억, 상처들을 수많은 위기 청소년과 위기가정을 만나며 스스로 드러내게 됐어요. 상처는 가릴수록 아무는 게 아니라 햇볕을 맞고 바람을 맞을수록 회복되더라고요.”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자란 최 대표는 작은 키와 소심한 성격으로 학창시절 내내 빵셔틀, 집단 폭력 등 견디기 힘든 아픔을 겪었다. 군대에서는 술을 받아마시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별나다는 꼬리표가 붙었고 온갖 괴롭힘에 시달렸다. 학교에선 왕따, 군대에선 관심병사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무너지지 않았다. 되려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겪는 위기 청소년에 대한 마음을 품고 목회자로 서원했다.
고향인 충북 영동을 떠나 대전 침례신학대 02학번으로 입학한 최 대표는 대학 축제 사회를 보던 선배 임우현 목사를 만나며 크리스천 레크리에이션 강사를 꿈꾸게 됐다. 2006년 레크리에이션 자격증을 취득한 그는 교회학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경력을 쌓고 2018년 소나기컴퍼니를 창립했다.
최 대표는 현재 침신대 겸임교수,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학가협) 전속 MC로 활동하고 있다. 자신의 아픈 경험을 밑거름 삼은 그의 레크리에이션은 위기 청소년과 학교폭력 피해자 가족에게 회복과 희망의 웃음이 되어준다. 그는 “소나기라는 이름엔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며 “‘소’통과 ‘나’눔을 통해 ‘기’쁨을 전하는 회사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회자로서 소나기(행사)가 다녀갈 때 사람들이 이 시간을 조급해하거나 답답해하기보다 여유를 갖고 비를 즐길 수 있도록 하겠다는 포부가 담겨있다”고 덧붙였다.
레크리에이션으로 전하는 복음
최 대표는 자신의 역할을 단순한 행사 사회자가 아닌,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예수님께서는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땅끝까지 그분의 증인이 되는 삶을 살겠다”는 다짐대로 그는 기독교 행사가 아닌 자리에서도 기독교적인 가치를 녹여낸다. 자신을 소개할 때 기독교와 일반 행사의 크로스오버 MC라고 말하고, 자신이 경험한 아픔을 이야기하면서는 신앙의 힘으로 아픔을 극복했다고 간증한다. 그는 “MC를 보며 꼭 지키는 원칙이 있는데, 이는 누군가를 부끄럽거나 민망하게 만들어 나머지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일을 절대 하지 않는 것”이라며 “행사를 통해 사람들에게 기독교 가치인 사랑과 공감을 전달하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 최 대표의 레크리에이션에 참여했다가 교회에 나가게 된 아이들도 있다.
“과거 제주도에서 열린 학가협 행사에 가정폭력을 당하는 어머니와 학교폭력에 노출된 두 아들이 함께 참석했어요. 그 어머니는 힘든 나날을 신앙으로 견디는 신실한 크리스천이었는데, 아이들은 폭력을 당하면서도 하나님만 찾는 어머니에게 반감을 품고 있었죠.” 최 대표는 그날 행사에서 퀴즈대회 우승을 한 어머니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린다”고 소감을 말했을 때 아이들의 눈빛에 모멸감이 서린 것을 목격했다. 그는 “그게 신경 쓰여 추후 아이들의 가정에 방문해 ‘사실 너희 어머니가 믿는 하나님을 나도 믿으며 현재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은 모두 하나님 덕분’이라고 말하자 아이들이 놀라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달 뒤 그 가정을 재방문했을 때 아이들이 내 마음을 연 MC1호가 믿는 하나님, 우리 엄마의 하나님이 궁금하다며 엄마 손을 붙잡고 교회에 나갔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최 대표는 “이 일을 계기로 내가 나의 아픔을 바탕으로 이야기하고 내가 믿는 하나님을 전하면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며 “내가 레크리에이션이라는 무기로 청소년의 마음을 두드려 아이스브레이킹, 즉 우리 사이의 얼음을 따뜻하게 녹여내면, 교회가 녹은 땅에 심어진 씨앗에 물을 부어주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위’대한 ‘기’회를 지닌 청소년들
최 대표의 목표는 레크리에이션과 같은 기독 문화를 통해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세상과 교회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는 것이다. 다음세대 후학을 교육하고, 이들을 동역자로 세우는 일에도 힘쓰는 이유다.
그는 “소나기컴퍼니에서 함께 동역하는 MC선우, MC면지와 함께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주고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역할을 감당하고 싶다”며 “앞으로도 MC1호로서 사람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고,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할 수 있도록 헌신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전=글·사진 조승현 기자 cho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