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없이 도전해보길” 아흔넷 권사님이 들려주는 ‘그림책 도전기’

입력 2025-04-02 05:03
박옥진 토론토한인장로교회 권사는 1일 국민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다음세대를 향한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박 권사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 토론토한인장로교회 제공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이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로 어딜 다니지 못한 어르신은 답답하다고 호소했다. 주변에선 볼펜으로 종이에 무엇이든 자유롭게 그려볼 것을 권면했다.

어르신이 가지각색 펜으로 선을 잇기 시작하더니 꽤 볼 만한 그림이 탄생했다. 내친김에 이웃들은 평소에 생각나는 글이나 다른 사람에게 하고 싶은 말을 써보라고 권했다. 어르신은 진심을 다해 써 내려 갔다. 그렇게 그림과 글귀를 모아 놓으니 한 권의 책이 됐다. 박옥진(94) 토론토한인장로교회 권사의 세상에 하나뿐인 그림책이 만들어진 과정이다.

박 권사는 지난 2월 ‘94세 할머니의 이야기가 있는 그림’을 출판했다. 2022년 코로나가 끝날 무렵 박 권사가 90세를 기념해 처음 펴낸 책인 ‘이야기가 있는 그림’ 후속작이다.

박 권사가 펴낸 ‘94세 할머니의 이야기가 있는 그림’의 표지. 토론토한인장로교회 제공

박 권사는 저서를 통해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일상 속 평범한 소재들을 다룬다. 그림 옆에는 당시 느꼈던 감정이 적혀 있다. 투박하지만 진솔하게 표현한 글귀에는 박 권사의 절절한 신앙심이 묻어난다.

‘알록달록 블라우스에 치마 입고 예배당에 가는 길/ 제법 서늘한 바람이 솔솔 부니/ 버스를 타고 갈까 말까 망설이다/ 아니! 담에 늦으면 타야지…/ 꽃도 나무도 반겨주니/ 하나님 만나러 가는 길이 멀지는 않아.’(예배당 가는 길)

1931년 강원도에서 태어난 박 권사는 결혼 후 해외에서 거주하다가 1988년 캐나다에 정착했다. 그는 일평생 자식과 가정을 위해 헌신했다. 그렇기에 아흔을 넘어서까지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일에 흥미가 있는지 모르고 지냈다.

뒤늦게 깨달은 취미는 미술이었다. 누가 봐도 늦었다고 할 법했지만 꾸준한 노력 끝에 박 권사는 책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그의 책은 신앙심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고, 그러니 포기하지 말고 다시 힘을 내보자는 메시지로 다가온다.

그림책 중 ‘단풍나무’ 시와 그림. 토론토한인장로교회 제공

박 권사는 1일 국민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평생 예수님만을 믿고 살았다는 삶의 흔적을 후손에 꼭 남기고 싶어 책을 준비했는데 나 자신과 이웃을 위로하는 선물이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미술의 ‘미’ 자가 무엇인지도 몰랐다고 밝힌 박 권사는 “저도 이렇게 책을 냈는데, 여러분은 무엇이라도 도전할 수 있다”면서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마음을 붙잡고 겁 없이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책의 수익금은 모두 선교비로 전달된다. 당초 책을 발간할 때부터 모든 비용을 박 권사가 직접 부담했다. 박 권사는 “마음 한편에는 직접 선교를 다니지 못한 것이 항상 아쉬움으로 남아 있다”면서 “가난한 선교지에 뭐라도 보탬이 된 후 하나님께 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동규 기자 kky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