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산불의 양상이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진단했다. 이번 영남 산불에서 보듯이 인간의 통제를 넘어서는 규모로 대형화 됐고 발생 주기도 짧아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산불 예방·진화 패러다임 변화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박영대 대구대학교 산림자원학과 교수는 1일 “영남 산불은 물론 미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발생한 산불을 보면 이제 통제 가능한 규모와 범위를 벗어나는 모습”이라며 “이는 기후위기에 따른 것으로 장비와 인력이 충분하다고 해도 사실상 대형화, 장기화 되는 산불에 대응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영남 산불 보다 더 위험한 산불이 더 자주 올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 장·단기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과거에는 30~40년마다 한 번씩 큰 불이 왔었는데 최근에는 주기가 굉장히 짧아지고 있어 자연회복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며 “환경 훼손 논란이 있지만 임도 확충 등 사람이 개입하는 장기적인 대책 시행을 서둘러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경북의 경우 사유림이 많아 제약이 많았는데 이제는 국민적 합의를 통해 사유지라도 위험한 기간에는 입산 통제를 강제하는 등의 단기 대책도 당장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산을 태울 수 있는 연료인 오래된 나무를 과감하게 솎아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자연에 손을 대는 것이 무조건 나쁘다는 과거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김성용 국립경국대 산림과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산을 태울 물질들이 너무나 많지만 외부의 반대가 심해 솎아베기가 잘 되지 않는다”며 “나무들의 수령이 보통 50년을 넘으면서 나뭇잎이 떨어지는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는데 공격적으로 솎아베기를 못해 산을 태울 물질이 포화상태”라고 지적했다. 고기연 한국산불학회장 역시 “연료는 목재와 낙엽이고 연료 관리는 벌채인데 산불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벌채를 못하고 쌓아두고만 있다”며 “평시에 벌채를 자주 해서 나무의 밀도를 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산림청도 벌채를 통해 목재의 자원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벌채가 쉽지 않다보니 제대로 되지 않는 실정”이라며 “우리나라는 산림이 국토의 63%에 달하는데도 목재 자급률이 10%대에 불과하다”고 우려했다.
예방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는 대형산불 관련 정책이 대응 단계에 집중돼 있는데 대응도 중요하지만 산불을 막기 위한 예방 분야에도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며 “산림 인접지에서의 쓰레기 소각을 어떻게 막을지, 화목보일러를 어떻게 대체할지 등 일상에서의 변화를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 회장은 “이번 산불은 첫날 하루에만 29건이 동시에 발생했기 때문에 진화대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대응이 어려운 수준이었다”며 “지방자치단체들이 입산 통제구역을 제대로 운영하고 논·밭두렁에서 소각 행위를 하지 않도록 강력하게 지도하는 등 예방에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명균 계명문화대 소방환경안전과 교수는 “우리가 지진을 겪고 나서 대피와 대처 요령 등을 숙지하게 됐듯이 이번 대형 산불이 인식변화의 계기가 돼야 한다”며 “우리나라도 선진국 반열에 올랐으니 산불 예방에 대한 시민의식을 더 키울 필요가 있고 국가적 대응력도 이에 상응하게 발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안동·대전=최일영 전희진 기자 mc10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