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지 못 하다'는 인식이
헌재 신뢰 위기의 원인
"헌재 불신" 40% 응답률도
검찰 진술 증거 능력을 제한한
형사소송법 따르지 않고
과거 선례만 고집하는 헌재
재판관들의 정치적 성향 따라
보수 진보 대립 구도 재연하면
헌재 신뢰 더 떨어질 것
헌재 공정성, 중립성 강화할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헌재 신뢰 위기의 원인
"헌재 불신" 40% 응답률도
검찰 진술 증거 능력을 제한한
형사소송법 따르지 않고
과거 선례만 고집하는 헌재
재판관들의 정치적 성향 따라
보수 진보 대립 구도 재연하면
헌재 신뢰 더 떨어질 것
헌재 공정성, 중립성 강화할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헌법재판관들은 당대 최고의 현인들일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이 있다. 대통령과 고위공직자들의 탄핵심판, 국가기관 간 권한쟁의심판, 정당 해산, 위헌법률심판, 헌법소원 등을 관장하는 헌법재판관들의 권한과 책임은 막중하다. 헌재 결정은 모든 국가기관이 따라야 한다. 헌법 심판은 일반 법원 재판과 달리 불복 절차가 없다. 그래서 경륜과 지혜가 출중할 뿐 아니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법조인이 헌법재판관을 맡아야 한다는 당위가 제기된다. 헌재 결정에 승복해야 한다는 여론의 주문에는 재판관들에 대한 이런 기대와 믿음, 당위가 전제돼 있다.
그러나 헌재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가 예전만 못하다. 지난달 14일 공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를 인용하면 ‘헌재를 신뢰한다’는 응답률은 53%로 경찰(48%)이나 법원(47%)보다 높았지만 지난 1월 같은 조사에 비해 4% 포인트 떨어졌다. ‘헌재를 불신한다’는 응답률은 31%에서 38%로 7% 포인트 늘었다. 헌재의 신뢰 하락 추세는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확인된다. 3월 27일 공개된 여론조사업체 4사(엠브레인퍼블릭, 케이스탯리서치, 코리아리서치, 한국리서치)의 공동조사에서 ‘헌재를 신뢰하지 않는다’는 반응은 40%였다. 헌재에 대한 불신이 이렇게 높은 적은 없었다.
헌재가 신뢰의 위기를 맞은 건 헌재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공정하지 못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헌법재판소법은 탄핵심판을 구두변론으로 진행하고 심리절차는 형사소송법을 준용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헌재의 심리절차는 2020년 개정된 형사소송법을 따르지 않고 있다. 요즘 형사재판에서는 검찰 진술의 증거 능력을 제한한다. 종전에는 피고인이 검사 앞에서 진술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더라도 검찰 진술을 증거로 사용했으나 형소법 개정 이후에는 법정에서 피고인이 부인하면 검찰 진술을 증거로 쓸 수 없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증인들이 헌재 법정에서 진술을 거부했는데도 헌법재판관들이 검찰 진술을 증거로 채택하겠다고 해서 당사자들의 반발을 샀다. 헌재는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등 선례를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는 법 개정 이전의 선례여서 수긍하기 어렵다.
신문 시간의 기계적 균형을 맞춘다며 초시계까지 동원하고, 질문할 기회를 달라는 윤 대통령의 요청을 거절한 것은 헌재가 공정하지 못하고 지나치게 인색하다는 비판을 받게 했다. 윤 대통령의 신속한 파면을 바라는 국민들에게는 속 시원하게 비쳤을지 모르지만 반대편 국민들에게는 재판부가 예단을 갖고 편파적으로 심리를 진행한다는 인상을 줬다. 헌재의 이런 태도는 윤 대통령 지지자들을 자극하는 빌미가 됐고, 헌재의 중립성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헌법재판관들의 정치적 편향성은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의 탄핵심판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비록 정족수(6명)에 미달해 이 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는 기각됐으나 심리에 참여한 재판관 8명의 의견은 4대4로 쫙 갈렸다. 보수, 진보 양 진영의 대결을 재연한 듯한 재판관들의 대립은 헌재가 과연 중립적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헌법재판관들의 편향성은 어느 정도 선출 방식에서 기인한다. 재판관 9명의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지만 이중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하고, 또다른 3명은 국회가 선출한다. 따라서 헌법재판관들의 성향 분포는 정치 지형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떤 재판관을 어느 정파에서 임명하고 지명하고 선출하느냐에 따라 탄핵 심판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면 헌재의 신뢰 추락은 막을 방법이 없다.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의 임명을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이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으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재탄핵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이나, 여권이 그의 과거 이력을 문제 삼아 한사코 임명을 반대하는 것이나, 모두 마 후보자의 가세로 재판부의 진보 우위가 굳어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헌재가 오는 4일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선고하면서 어떤 결정을 내놓더라도 그 부작용과 후유증은 상당할 것이다. 그것이 모두 헌재의 책임은 아니겠으나 탄핵심판 과정에서 드러난 공정성 훼손과 신뢰 위기는 헌재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차제에 정파적 대립을 극복하기 위해 헌법재판관 선출 방식도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겠다.
전석운 논설위원 swc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