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브리(Ghibli)’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 등을 제작한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 이름이다. 원래 이 단어는 사하라 사막에 부는 열풍(熱風)을 가리키는 이탈리아어로 2차대전 당시 이탈리아의 군용정찰기(Caproni Ca.309)에 붙은 명칭이었다. 비행기 광팬이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이 비행기를 워낙 좋아해 스튜디오 명칭으로 사용하게 됐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이나 알 법한 회사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지난주 발표된 오픈AI의 이미지 생성 인공지능 모델 ‘챗GPT-4o(omni) 이미지 제너레이션’ 덕분이다. 이 모델은 명령어를 상세히 입력하지 않아도 의도를 파악해 이미지를 생성해준다. 출시 후 이용자들이 인기 애니메이션 화풍의 이미지를 생성해 SNS에 올리며 화제가 됐는데 가장 인기를 끈 게 ‘지브리 스타일’이다. 가족이나 친구들 사진을 올린 뒤 “지브리 스타일로 그려줘”라는 식으로 명령하면 지브리 스튜디오가 제작했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이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에 나왔던 인물과 비슷한 이미지로 바꿔준다. 오픈AI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이 자신의 X(옛 트위터) 프로필 사진을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로 교체했고 미국 백악관도 공식 X 계정에 지브리 스타일 이미지를 게재했다.
이미지를 완벽하게 원하는 스타일로 바꿔주는 이 AI 모델은 저작권 침해 논란까지 덩달아 몰고 왔다. 법조계에선 창작 활동 장려 차원에서 대체로 작품 스타일(화풍)은 저작권이 아닌 아이디어 영역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수작업으로 그려낸 작품을 대가 없이 AI가 모방하게 용인한다면 시간과 비용을 들여 만들어낸 창작물의 가치가 사라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누가 봐도 지브리 스타일인데 원작과 다른 소재라고 해서 저작권 침해가 아니라고 할 수 있냐는 것이다. 이미지뿐만 아니라 신문 기사 등 저작권 있는 텍스트 학습을 둘러싼 논란 또한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지브리 스타일이 AI의 저작권 문제를 다시 환기하고 있는 셈이다.
정승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