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정권 시절이던 1985년 4월 프랑스의 로랑 파비우스 총리가 방한했다. 그는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헬기로 구기동 서울미술관을 찾았다. 프랑스에서 이듬해 부부 화가인 강명희·임세택 2인전을 앞두고 있던 시점이었다. 이 사건으로 ‘빨갱이 소굴’ 취급을 받던 서울미술관은 돌연 전두환 정권에 고마운 존재가 돼 정부 지원을 받기도 했다.
서울 종로구 흥지문 1길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미술계의 학전’으로 평가받는 서울미술관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서울미술관, 그 외침과 속삭임’전을 한다. 아카이브 60점과 영상이 소개되는데, 학예사로 근무했던 최석태 미술평론가가 전하는 이 일화는 미술관의 설립자 임세택 부부 화가가 프랑스에서 구축한 입지, 한국에서의 서울미술관 처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서울미술관은 부부가 프랑스에 체류하며 한국을 오가던 1981년부터 2001년까지 운영됐다. 한국 최초의 사립미술관이다. 오윤과 함께 민중미술의 태동을 알린 ‘현실동인’(1969) 창립회원이었던 임세택이 상업은행장인 부친의 도움을 받아 개관했다. 멕시코대사관 건물을 미술관으로 활용해 화제가 됐다. 초대 관장은 훗날 국립현대미술관장이 된 미술평론가 김윤수씨가 맡았다.
서울미술관은 마르셀 뒤샹과 만 레이, 메레 오펜하임 등 다다와 초현실주의, 신구상주의 등 20세기 초반 유럽 미술을 알리는 교두보였다. 동시에 신학철, 임옥상, 권순철, 민정기 같은 소위 민중미술 작가의 전시를 잇달아 개최하며 80년대 민중미술의 착근에 기여했다. 정권에 의해 빨갱이 소굴로 비친 것은 그래서다. 외환위기 이후 경영난을 겪자 한국과 프랑스 문화예술인 100여명이 구명운동에 나섰지만 결국 폐관했다. 건물은 2023년쯤 철거됐다. 미술계에서는 임세택을 사재를 털어 ‘공연계의 뒷것’을 자처하며 학전 소극장을 운영한 김민기에 비유한다.
강명희 작가는 지난 26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박정희가 암살된 79년 딸이 태어나면서 한국에 들어오는 ‘조건’으로 부모님께 미술관 건립을 요청했다. 한국 화가들이 서구 콤플렉스 없이 맘껏 전시를 하도록 뒷받침하는 미술 공간을 만들고 싶어했다”고 회상했다. 김달진 관장은 “임세택씨는 ‘미술관을 끝까지 존속시키지 못했다’며 전시 속 영상 인터뷰도 고사했다”고 전했다.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