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퇴근 길, 옆차로의 운전자가 창문을 내리고 날 향해 거칠게 욕설을 퍼붓는다. 전화가 왔는데 직장 동료가 나에 대한 험담을 하는 소식을 전한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고 짜증을 낸다. 이런 순간 우리는 속상하고 분노가 치민다. 마음 같아서는 즉각 반응하고 싶지만, 그럴수록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뿐이다.
많은 사람이 가장 쉬운 해결책으로 상대편이나 환경을 비난한다. 순간적으로 속이 시원하고, 자신이 정당하다고 느껴진다. 술 한 잔 하며 불평하거나 욕설을 하면 자신이 세상의 피해자나 영웅이 된 기분이 생겨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일시적 위로일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자신도 비난하는 대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때의 실망감은 더 깊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감정을 억누르는 것도 답이 아니다. 자기 스스로 마음을 다독이며 “마음 상할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을 만났을 때 느끼는 분노나 좌절감, 속상함 등을 달래는 것은 엄청나게 힘이 든다. 당장 욕이라도 하면 마음이 편한데, 스스로 자기를 위로해야 한다니! 상대편이 잘못했다고 생각하는데 자기 반성을 해야 한다니! 이것은 도를 닦는 일이다.
내 마음을 다루는 더 나은 방법은 이미 일어난 일보다는 이후의 시간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가령 낯선 운전자가 길을 막고 욕설을 했을 때 그 사람에게 화를 내면서 계속 속상해할 것인가, 아니면 평온한 하루를 지내는 것에 초점을 맞출 것인가. 성숙한 삶은 후자를 택하는 것이다. 복수는 즉각적이고 쉽지만, 이런 선택은 어렵다.
이 어려운 일을 어떻게 할 것인가. 우선, 자신을 솔직하게 들여다 보아야 한다. 자신이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이나 생각을 있는 그대로 꺼내 놓아야 한다. 나는 쉽게 흥분하는가? 남의 말에 영향을 많이 받는가?
두 번째는 그런 자신을 수용해야 한다. 수용한다는 것은 부정적인 모습을 억지로 변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그런 사람임을 인정하고, 그 모습을 거부하지 않고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가령 자신이 치졸하다고 느꼈을 때 그것을 거부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마음속으로라도 ‘나에게 이런 면이 있구나’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더 여유로워진다.
마지막으로 이런 경험을 직접 해보고 기쁨을 체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모욕적인 말을 들었을 때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수용할 때의 자기에 대한 감정을 관찰해 보라. 처음에는 억울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상대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나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그 순간 우리는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임을 알게 되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기쁨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런 연습이 중요한 이유는 자기 시선을 외부가 아닌 내면으로 돌리고, 성숙한 삶을 선택하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인간중심 상담에서는 이를 ‘의지’라고 한다. 척박한 땅에서도 씨앗이 자라듯 의지는 가장 힘든 순간에 빛을 발한다. 중요한 것은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한 방식으로 다루는 것이다. 타인의 말과 행동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주체적으로 반응하는 순간 우리는 자기 존중을 느낀다.
우리는 모두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나는 지금처럼 타인을 탓하며 미숙한 삶을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자기 존중과 성숙함을 경험하며 더 나은 삶을 살아갈 것인가. 매일 매 순간 하는 당신의 선택이 당신의 삶과 품격을 결정한다. 당신은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차명호 평택대 상담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