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상호관세 발표를 앞두고 한국을 비롯해 아시아 증시가 일제히 급락했다. 관세 부과가 전방위로 이뤄질 것이란 전망에 따른 미국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우려 확산 등으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3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90% 내외의 종목이 하락했다. 코스피 낙폭(-3.00%)은 지난 2월 28일(-3.39%)에 이어 올해 들어 두 번째로 큰 규모였고, 코스닥(-3.01%)도 지난 2월 28일(-3.49%)과 같은 달 3일(-3.36%)에 이은 세 번째였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증시 급락 배경으로 현지시간 2일 발표될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관련 공포 심리 확산을 꼽는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트럼프 행정부가 전 세계에 20% 보편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투자 심리가 위축됐다.
최근 발표된 각종 미 경기지표에서 스태그플레이션 징후가 포착된 것도 시장의 경계감을 키웠다. 지난주 미국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가 예상치를 웃돌았고, 미시간대 소비자 심리지수는 2022년 9월 이후 최저치였다.
국내에선 공매도 재개까지 겹쳐 불확실성이 극대화했다. 재개 첫날 공매도 거래 규모는 총 1조7284억원으로 집계됐는데, 이 가운데 외국인 거래대금이 1조5434억원으로 전체의 89.30%를 차지했다.
원·달러 환율도 주간거래 종가 기준 1472.90원까지 치솟으며 금융위기 시기인 2009년 3월 13일(1483.50원)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대외적으로는 달러화 고평가가 해소되고 있지만 원화는 글로벌 외환시장과 디커플링되고 있다”며 “정치적 불확실성이 3개월가량 이어지면서 국내 고유의 리스크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등 다른 아시아 증시도 일제히 하락했다. 일본 닛케이225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4.05% 급락한 3만5617.56에 거래를 마쳤다. 도쿄일렉트론(-6.57%) 도요타(-3.13%) 등 반도체와 자동차주가 지수 하락을 이끌었다. 중국 심천종합지수(-1.04%)와 대만 가권지수(-4.20%), 홍콩 항셍지수(-1.31%) 등도 모두 내렸다.
다만 이번 아시아 증시 급락이 지난 2월 말 미국의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관세 부과 때와 유사한 흐름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상승 여지가 없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코스피는 지난 2월 28일 3.39% 급락했지만 미국이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관세를 유예한다고 발표하면서 빠르게 반등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관세와 경기 침체 우려가 선반영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보다 더 강한 관세가 부과되지 않는 이상 분위기가 반전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위험자산 회피 심리에 금값은 고공행진하고 있다. 이날 오후 3시44분 기준 국제 금값은 전 거래일보다 0.52% 오른 온스당 3117.39달러에 거래됐다. 미국에서 채권 수익률(+2%)이 주식 투자 수익률(-5%)을 넘어섰다는 보도도 나왔다.
장은현 기자 e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