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가 연 ‘저가 HBM’ 시장… 삼성·SK하이닉스에 기회?

입력 2025-04-01 00:22

올해 초 중국 딥시크가 출시한 저비용·고성능 인공지능(AI) 모델 ‘R1’에 엔비디아의 저사양 AI 가속기가 탑재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저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이 부상하고 있다. 그동안 저가 HBM을 생산해오던 국내 업계에는 매출 다변화를 달성할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하지만,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수출 제재 범위가 확장할 가능성이 있어 한국 기업들의 셈법은 복잡해지고 있다.

31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딥시크 열풍으로 알고리즘과 코딩 등 소프트웨어 최적화로 하드웨어의 약점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게 증명되면서 중국 내 IT 기업들은 저비용·고성능 AI 모델 출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 텐센트는 최근 AI 추론 모델 ‘훈위안 T1’을 시장에 공개했다. 훈위안 T1은 딥시크 R1과 유사하게 작동하지만 지식 및 추론 테스트에서는 R1보다 우수한 성능을 갖춘 것으로 알려졌다. 복잡한 수학 문제도 더 빨리 푸는 등 문제 해결 능력도 월등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의 스타트업 모니카는 비슷한 시기 AI 비서 ‘마누스’를 내놓았다. 마누스는 R1과 대등한 성능을 갖췄고, AI 문제 해결 평가에서는 미국 오픈AI의 ‘딥 리서치’를 능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딥시크는 R1이 엔비디아의 저사양 AI 가속기 H800을 사용했다고 밝혔는데, 가격 측면에서 경쟁력을 갖는 훈위안 T1과 마누스 역시 H800을 탑재했을 가능성이 크다. H800의 가격은 엔비디아의 고성능 칩인 H100의 절반 수준이다.

저사양인 H800을 탑재한 AI 모델의 잇따른 등장은 국내 기업들의 매출 다변화에 도움이 될 전망이다. H800에는 구형 제품이자 HBM 4세대인 ‘HBM3’가 탑재되는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이를 엔비디아에 공급하고 있다. 중국 내에서 엔비디아의 저사양 AI 가속기에 대한 수요가 높아질수록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3 매출량도 많아지게 된다.


특히 HBM 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삼성전자에게 또 다른 먹거리가 될 수 있다. 엔비디아는 최근 저전력·저사양 관점에서 저전력더블데이터레이트(LPDDR)와 그래픽DDR(GDDR) 등의 제품에 관심을 보이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HBM 외의 틈새시장을 공략할 가능성도 열렸다.

다만 미국의 중국 제재가 변수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미국 정부는 엔비디아의 고사양 칩 외에 저사양 칩 수출은 허가하고 있지만, 대중 수출에 대한 추가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 섣불리 저가 HBM 생산 설비를 늘리기엔 기업이 부담해야 할 리스크가 크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지난해 말부터 동맹국이 중국에 고사양 HBM을 판매하는 것을 규제하고 있다”면서 “AI 시장 자체도 빠르게 변해 불확실성이 큰데 지정학적 변수도 존재해 기업들 셈법이 복잡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나경연 기자 contes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