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의 10조원 추경안 제시, 여야 신경전 벌일 때 아니다

입력 2025-04-01 01:20

정부가 10조원 규모의 ‘필수 추가경정예산’을 추진하기로 한 건 늦었지만 다행스럽다. 여야 협상이 이뤄진 뒤 추경안을 제출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바꾼 것인데 최악의 산불 피해, 피폐한 민생 경제를 더이상 두고볼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권은 급박한 상황을 인식해 규모와 내용에 서둘러 합의하면서 즉각 추경 편성에 나서야 한다.

정부는 필수 추경 3대 분야로 재난·재해 대응, 통상 및 인공지능(AI) 경쟁력 강화, 민생 지원을 꼽았는데 급한 건 산불 피해 대응이다. 이번 산불로 약 4만8000㏊에 이르는 산림 훼손, 사상자 75명, 이재민 약 7000명 등 역대 최대 규모의 피해가 발생했다. 이재민에 대한 임시 주거시설 마련, 인프라 및 생업 복구 등에 상당한 규모의 예산이 투입돼야 할 것이다.

탄핵 정국의 불안감은 여전한 가운데 대형 재난까지 겹치며 경제 심리가 냉각되고 있다. 벚꽃 축제 등 봄철 행사가 상당수 취소 혹은 축소되고 있어 내수에 악영향이 우려된다.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 등 통상리스크가 현실화하고 있고 제조업·건설업의 업황은 나아질 기미가 안 보인다. 31일 원·달러 환율(1472.9원)이 15년9개월 만의 최고치로 오른 건(원화가치 하락) 한국 경제의 위기 징후나 다름없다. 일부 외국 경제기관은 한국의 올 성장률 전망치를 0%대로 낮추기까지 했다. 경제 회복을 위한 마중물 동원에 한시가 급한 실정이다.

그럼에도 정치권 이전투구는 여전하다. 여야 원내대표는 이날 우원식 국회의장 주재로 회동을 갖고 추경에 대해 논의했지만 별 소득 없이 끝났다. 더불어민주당은 정부 추경안에 “알맹이 없는 쭉정이”라고 했으나 재난 예비비 삭감, 감액 예산 단독 통과 등의 전횡을 일삼은 당으로서 덮어놓고 비판할 일이 아니다. 다만 서민경제의 실상을 놓고 볼 때 규모는 10조원보다 한국은행이 재정건전정과 경기 진작을 고려해 제시한 15조~20조원 수준이 적절해 보인다. 여야는 정부안 규모를 일부 증액시키는 선에서 우선 통과시킨 뒤 미진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 정도다. 서민의 삶을 직시한다면 지금 추경을 놓고 신경전 벌일 때가 아님을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