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헌재 선고를 기다리며

입력 2025-04-01 00:32

언제라도, 이 순간에라도 헌법재판소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을 지정할 수 있다. 그런 기대로 뉴스 창을 ‘새로고침’ 하며 한 달을 보냈다. 그사이 대치는 매시간 격렬해졌다. 두 차례 위헌 판단에도 소식이 없는 마은혁 재판관에 대한 임명 요구부터 한덕수 총리 재탄핵 예고와 최후통첩, 심지어 야당 초선의원들에 대한 내란선동죄 고발 소식까지 나왔다. 모두가 데드라인이라고 동의하는 4월 18일, 헌재 재판관 두 명의 퇴임일이 다가온다. 이대로 시한을 넘기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6인 헌재가 기능 마비로 멈춘 와중에 여의도의 정치 권력과 용산의 행정 권력이 부딪치고, 시민들의 성난 의지와 군·경찰의 물리력이 거리에서 충돌하게 될까. 어떤 국가기관도 법적 정당성을 보증할 수 없는 권위의 공백이 가리키는 건 대혼란뿐이다.

12·3 비상계엄 직후만 해도 이런 상황에 몰릴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돌이켜보니 쉬운 건 하나도 없었다. 부결되고 불발되고 반려되고 취소되고. 고비는 단계마다 찾아왔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통과부터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경찰·검찰이 경쟁한 내란죄 수사와 재판, 증거 수집과 소환조사, 내란 우두머리 혐의자의 인신구속 과정까지 매번 그랬다. 그렇다면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진행되지 않았던 모든 순간이 불길한 신호였을까. 피의자 본인과 지지자들의 저항이 격렬했던 건 맞는다. 하지만 손발이 묶인 당사자가 의지를 관철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을 거다. 균형을 깬 건 국민의힘인 듯하다. 극우에 기댄 선택이 혼탁한 판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을 움직이게 한 집단 합의의 전제는 하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대한 반대였다.

“현시점에서는 면죄부를 받은 이재명을 이길 수 없다. 그래서 (윤 대통령) 탄핵은 불가하다.” 여권 정치인들이 탄핵 국면에서 무슨 계산을 해왔는지는 지난 26일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2심 무죄 선고 후 현직 국회의원이 쓴 글을 읽고 이해했다. 계엄 직후에도 여권 내 탄핵 찬성파는 소수였다. 그 한줌 소수의 마음까지 이 대표 무죄가 돌려놓았다. 그러고 보면 이 정부 내내 그랬다. ‘이재명을 막자’는 모든 차이를 넘어 여권을 뭉치게 한 치트키였다. 심지어 대통령 운명조차 이재명이라는 상수 앞에서는 종속 변수에 불과해 보였다. 시선도, 관심도, 목표도 온통 이재명. 이런 사고의 연장선에서라면 이 대표 재판 결과를 탄핵 찬반의 논거로 삼는 것도, 그걸 공개 고백하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 아닌 게 된다. 그들끼리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재명으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대법원 판결도 받고 다른 재판 결과도 받아보도록 시간을 벌기 위해’ 그들은 무슨 일이든 할 준비가 됐다. 이런 결기는 헌재의 선고가 늦어지는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추측만 할 뿐이다.

이 대표를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다. 그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믿는 지지자만큼이나 절대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반대자도 많다. 아이러니한 건 여당의 집요함이 낳은 뜻밖의 효과다. 여권 전체가 나서서 제1야당 대표의 존재와 탄핵 찬반을 엮은 덕에 이재명이라는 개인의 정치 생명은 나라의 운명과 연동돼 버렸다. 극렬 반대자라면 대통령 복귀를 받아들여서라도 이 대표를 막고 싶을 거다. 하지만 그런 이들이 다수일까. 여권이 이 대표에 대한 정치적 반대를 윤 대통령 복귀와 동의어로 만든 마당에 대통령 복귀를 용인할 수 없는 유권자 다수는 이 대표를 응원할 수밖에 없게 됐다. 유권자와 야당의 정치적 연대를 여당이 맺어준 셈이다. 이게 정말 국민의힘이 의도한 대선 플랜인가. 정치공학에 무지한 관전자로서 묻고 싶은 질문이다.

이영미 영상센터장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