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산불로 교회 잿더미… “그럼에도 감사” 고백

입력 2025-04-01 05:01
지난 25일 영남지역 산불로 전소된 경북 영덕의 빛과소금교회 전경. 최 목사 제공

“모든 것이 다 타버렸지만 하나님 한 분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지난 25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영덕까지 번지는 재난 속에서 교회이자 사택을 잃은 최병진(43) 빛과소금교회 목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백한 말이다.

최병진 빛과소금교회 목사.

최 목사와 그의 가족은 화재 당시 맨몸으로 대피해 구사일생으로 생명을 건졌다. 최 목사는 개척교회 목회자로 수해와 화재라는 시련을 연이어 경험하면서도 믿음을 지키고 있다. 최 목사는 30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피해 입은 당시 급박한 상황을 들려줬다.

“25일 오후 6시쯤 대피령이 내려졌어요. 청송에 있다가 혼자 있는 아들을 데리러 왔는데 불이 빠르게 번진다고 해서 옷만 챙겼죠. 불이 그렇게 빨리 올까 싶었는데….”

불길은 세찬 바람으로 예상보다 빠르게 확산했다. 최 목사 가족은 영덕 강구면에 있는 어머니 집으로 대피했지만 오후 8시쯤 영덕군 전체에 대피령이 내려지면서 다시 피난길에 올랐다. 칠흑같이 어두운 가운데 포항 방향으로 가는데 차까지 휘청거릴 정도로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그날 밤 자정 지인으로부터 집이 다 탔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음 날 아침 현장을 찾았을 때 상황은 처참했다. 이를 지켜본 최 목사의 아내 김지혜(43) 사모는 주저앉아 울었다. 최 목사는 자신마저 무너질 수 없었다. 그래서 “걱정하지 말자. 하나님이 더 좋게 하실 것”이라고 위로를 건넸다.

2008년 개척된 교회는 2012년 최 목사가 담임 전도사로 부임했을 때 교인이 한 명도 없었다. 홀로 예배를 드리다 결혼 후 김 사모의 피아노 교습소에서 예배를 이어갔다.

최 목사는 2018년 태풍 ‘콩레이’로 수해를 입었을 때부터 목공 기술을 활용해 지역주민을 섬겼다. 2023년 5월 반복되는 수해를 피해 경북 영덕군 지품면으로 이사했지만, 이번 산불로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현재 최 목사 가족은 어머니 집에서 임시로 거주하고 있다. 화재 직후에는 아이들 옷이 하나도 없어 등교가 걱정됐지만 지역 학부모들과 지인들이 도움을 주어 해결하고 있다.

최 목사는 “현재 가장 필요한 것은 임시 거주지”라며 “가전제품도 필요하지만 놓을 곳이 없는 상황이다. 교단에서는 쌀과 이불, 오래 두고 먹을 통조림류를 보내주셨다”고 전했다.

최 목사는 40년 이상 감리교회를 섬긴 아버지의 신앙을 본받아 어려움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2005년 태풍 ‘나비’로 교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도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를 부르며 기도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지난 3년간 여름마다 수해를 겪으면서 과거 아버지가 불렀던 그 찬양으로 고백했어요. 수해에 이어 화재로 모든 걸 잃었지만 하박국 선지자처럼 하나님께 감사하며 고백합니다.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주셔서 교회가 지역에 뿌리내리며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김아영 기자 singforyo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