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V 지역 공무원 68만여명 거주
도시 전체가 실업자로 가득 찰 위기
“계산원이 정부 일자리보다 안정적”
정부, 법원 제동에도 구조조정 강행
도시 전체가 실업자로 가득 찰 위기
“계산원이 정부 일자리보다 안정적”
정부, 법원 제동에도 구조조정 강행
최근 워싱턴DC와 버지니아주 주택가에서 만개한 벚꽃 사이로 심심찮게 눈에 띄는 것이 ‘우리는 연방 공무원을 지지한다(We support our federal employees)’는 집 앞 팻말이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들어 해고나 명예퇴직을 당한 연방 공무원들을 응원하는 문구다. 워싱턴DC와 인근 메릴랜드주, 버지니아주를 약칭하는 ‘DMV 지역’에는 연방 공무원 수십만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정부효율부(DOGE)의 공무원 정리해고에 직격탄을 맞았다. 세계 최강국의 연방 공무원이었던 이들이 해고의 칼바람 탓에 봄이 왔지만 봄 같지 않은 시절을 맞고 있는 것이다.
1일(현지시간)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DMV 지역에는 68만여명의 연방 공무원이 거주하고 있다. 워싱턴DC에 6만3000여명, 메릴랜드에 30만여명, 버지니아에 32만여명이다. 워싱턴DC의 경우 전체 노동자의 21%가 연방 공무원일 정도로 공무원 비중이 높다. 트럼프 행정부가 공무원 감축을 추진하면서 도시 전체가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가득 찰 위기에 놓인 것이다. 폴리티코는 최근 “워싱턴의 실업률은 이미 조금씩 상승하고 있으며 행정부는 연방 건물을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트럼프 취임 이후 워싱턴DC에선 공무원 감축에 반대하는 시위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달 28일 뉴욕타임스(NYT) 집계에 따르면 트럼프 취임 이후 해고 등으로 감축된 공무원은 4만9110명, 자발적 퇴직에 동의한 공무원은 7만5000명이다. 특히 미국국제개발처(USAID)와 미국의소리(VOA)는 전체 직원의 99%가 감원됐다. 교육부 46%, 보건복지부 16%, 에너지부 13% 순으로 감원 비율이 높다. 대부분의 연방정부는 해고된 공무원 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확한 규모를 산출하기 어렵지만 NYT는 법원 문서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추론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여기에다 최소 17만1080명의 공무원에 대해 추가 감원을 예고했다. NYT는 미국 전역의 연방 공무원 240만명 중 12%가 감원의 영향권에 있다고 분석했다. 연방 공무원이 밀집한 DMV 지역에선 말 그대로 ‘해고 대란’이 진행 중인 셈이다.
해고된 공무원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크게 두 갈래다. 하나는 재취업이다. 연방정부의 해고에 DMV 주 정부는 재고용으로 맞서고 있다. 민주당이 이끄는 워싱턴DC와 메릴랜드주 정부는 해고된 연방 공무원들을 주 공무원으로 임용하거나 민간 일자리를 연결해주기 위해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최근엔 실업수당 신청과 지역 일자리를 안내하는 온라인 홈페이지가 개설됐다.
무리엘 바우서 워싱턴DC 시장은 연방 공무원들이 시 정부로 이직할 수 있는 채용 절차를 신속하게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웨스 무어 메릴랜드 주지사도 생명공학, 사이버 보안 채용 박람회 등을 열고 해고된 연방 공무원들을 영입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공화당 소속인 글렌 영킨 버지니아 주지사도 ‘버지니아에는 일자리가 있다(Virginia Has Jobs)’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홈페이지에서 카운티별로 공무원 및 민간 일자리 직책과 시급, 직장 위치 등을 안내해주는 서비스다.
재취업 시도 대신 법원에서 다툼을 이어가는 해고 공무원들도 많다. 트럼프 행정부의 공무원 정리해고가 무리하게 추진된 탓에 연방 법원에서 가처분 등으로 제동이 걸리는 일이 잦기 때문이다. 이 중 상당수는 법원 명령에 따라 일시적으로 복직됐지만, 아직 신분이 이도 저도 아닌 불안정한 상황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해고됐지만 다시 고용된 수천명이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에 있다”면서 “해고도 근무도 아닌 애매한 상태의 연방 공무원들”이라고 표현했다. 에너지부에서 일하던 케이틀린 요크(32)는 지난 2월 수천명의 신입 직원들과 함께 해고됐다. 그는 적법한 절차에 따른 해고가 아니라는 법원 판결 이후 복직은 했지만 여전히 유급 휴가 상태로 방치돼 있다. 한 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하고 있는 요크는 WSJ에 “계산원 일자리가 정부 일자리보다 더 안정적”이라고 말했다.
법원의 제동에도 트럼프와 머스크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연방정부의 낭비와 사기를 근절한다는 명목이다. 머스크는 연방 지출을 최소 1조 달러(1470조원) 절감하겠다며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최근 백악관 내부 문서를 입수해 트럼프 행정부가 정부 기관별로 최소 8%에서 최대 50%까지 감축하는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보도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최근엔 국가 안보 관련 기관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박탈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해고된 공무원들을 대신해 연방정부와 싸우는 노조의 권한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라는 게 노조의 시각이다. 미국 최대 노동단체인 노동조합 총연맹(AFL-CIO)은 성명에서 “이번 행정명령은 트럼프 행정부의 불법 행위에 맞서고 있는 노조에 대한 보복이라는 사실이 명백하다”며 “우리는 노조원들에 대한 터무니 없는 공격에 맞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임성수 특파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