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동 칼럼] 4월의 두 얼굴

입력 2025-04-01 00:50

4월은 대한민국엔 상실의 달
그늘진 과거의 기억 돌아볼 때

영남산불 집 잃은 이재민 신음
헌신과 봉사로 보듬어 안아야

기쁨·슬픔 교차하는 이맘 때
연대의 손을 서로 맞잡으면
아픔넘어 희망 얘기할 수 있어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추억과 욕정을 뒤섞고/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산에 오면 자유로운 느낌이 드는군요/밤에는 대개 책을 읽고 겨울엔 남쪽에 갑니다/이 움켜잡는 뿌리는 무엇이며/이 자갈 더미에서 무슨 가지가 자라 나오는가?’

영국 시인 T.S.엘리엇의 ‘황무지(The Waste Land)’의 일부분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4월을 시인은 왜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했을까. 1922년 공개된 433행에 달하는 이 장문의 시 곳곳에는 생식의 기쁨을 잃고 썩어서 사라지길 거부해 재생도 불가능한 서구 문명의 비극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1차 세계대전을 치른 당시 현실을 부활이 불가능해 보일 만큼 황폐하다고 본 것이다. 엘리엇이 이 시의 제사(題詞)에서 무녀의 입을 빌려 “죽고 싶다”고 했을 정도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시기는 새로운 시작과 희망의 씨앗도 품고 있다. 겨울의 침묵을 깨고 씨앗이 움트는 4월은 때로는 깊은 상실감과 무력감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끈질긴 생명력으로 절망을 딛고 일어설 용기도 불어넣어 준다.

4월은 대한민국에도 잔인한 달이었다. 유독 이달에 수많은 상실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일제의 모진 탄압을 뚫고 1919년 4월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됐다. 77년 전 4월에는 ‘제주 4·3 사건’이 있었다. 확정된 희생자 수만 1만4000여명이다. 진상조사 보고서에는 인명 피해를 2만5000~3만명으로 추산했다. 당시 제주 인구의 10%가량이 희생된 셈이다.

65년 전 4월에는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역사적인 4·19혁명이 있었다. 200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수백명의 어린 학생들이 희생된 세월호의 아픔도 4월에 있었다.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세월호가 전복되면서 수학여행을 떠난 단원고 학생 등 탑승객 476명 중 304명이 목숨을 잃었다.

2025년 4월도 다르지 않다. 경북 동북부 5개 시·군과 경남 산청, 울산 울주를 초토화시킨 영남 산불이 축구장 6만3245개, 여의도 156개 면적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역대 최악의 산불이 남긴 상흔으로 수만명의 이재민이 신음하고 있다. 나라 안팎으로 어수선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도 이달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2월 25일 윤 대통령 탄핵심판 최종 변론기일을 진행한 뒤 역대 최장 심리를 이어가고 있는 헌법재판소의 결단이 임박한 것이다. 결과에 따라서 민심이 요동을 칠 것이 분명하다.

암울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싹은 트는 법이라고 했다. 4·19혁명은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는 데 불을 댕겼고, 세월호의 비극은 어른들의 잘못된 관행과 부조리를 바로잡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번 역대급 영남 산불에서도 잔잔한 감동이 넘쳐 흘렀다. 태풍급 강풍에도 불과 맞서기를 마다하지 않은 진화대원들, 목숨을 걸고 화마와 싸운 수많은 시민들, 매캐한 연기를 마시면서 이재민을 돌 본 자원봉사자들, 며칠 만에 550억원의 성금을 쌓은 각계각층의 지원 손길들. 이런 숨은 영웅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었기에 우리는 내일을 향해 다시 발을 디딘다.

굳게 닫힌 꽃봉오리가 따스한 햇살 아래 마침내 꽃잎을 화려하게 펼치듯, 절망 속에서도 서로를 향한 따뜻한 손길을 내밀며 희망을 만들어가야 한다. 이념의 높디높은 벽도 서로 손을 펼치며 허물어야 한다.

함께 슬픔을 나누고,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며,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노력하는 우리의 연대 속에서 작은 희망의 불빛을 발견한다. 기억은 희망의 가장 강력한 토대이다. 4월의 아픔을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은, 희생된 이들의 넋을 기리는 가장 숭고한 행위이며, 동시에 미래를 향한 우리의 다짐을 굳건히 하는 약속이다. 4월의 잔인한 햇살은 때로는 따갑게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그 햇살 아래 서로의 그림자가 되어주고, 함께 걸어 나가면 희망을 키워나갈 수 있다. 꺾어진 꽃잎을 애도하며 그 자리에서 다시 피어날 새로운 희망을 품고, 연대의 손을 맞잡을 때 4월은 더 이상 절망의 달이 아닌 아픔을 넘어 희망을 이야기하는 달로 기억될 것이다. 진달래,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이다. 희망도 분명 그러하리라.

김준동 논설위원 jd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