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규정한 상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를 통과했다. 상법 개정안이 그대로 발효될지 아니면 국회에 대해 재의 요구가 이루어질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찬성하는 입장에선 주주 이익의 보호를 강화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개정안 시행 시 이사에 대한 소송이 늘어나는 등 여러 부작용을 우려한다.
경제계를 대표하는 8단체는 지난해부터 상법 개정안에 우려를 표명해 왔다. 상법 개정안에 따라 이사가 주주에 대해서까지 충실의무를 져야 한다면 국내 기업의 경쟁력이 저하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사는 과감하고 신속하며 도전적인 경영상 의사결정을 할 수 없게 되고 기업의 혁신 의지가 꺾이는 것을 우려한다.
이사의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를 규정하고 있는 상법 382조의3은 1998년 12월 28일 상법 개정으로 도입됐다. 당시는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집중되던 시기였고, 상법 개정도 그 일환에서 이뤄졌다. 이사의 회사에 대한 충실의무 신설, 기업 구조조정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회사합병 절차, 회사분할 제도 등이 미국과 프랑스법을 참고해 도입됐다. 중간배당, 주주제안, 집중투표 제도, 소수주주권 행사요건 완화 등도 포함됐다. 당시에도 광범위한 제도 도입에 대해 치열한 논쟁이 있었으나 경제위기 극복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로 학계와 경제계, 정부와 국회가 양보하고 타협을 모색하는 과정을 거쳐 상법 개정을 이뤘다.
이번 상법 개정 과정은 그때와는 다른 양상이다. 개정안 자체는 물론 대안으로 제시된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대해서도 충분한 논의가 부족한 상태에서 상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국내 100만개 이상의 주식회사에 적용된다. 무릇 법률은 명확한 용어로 규정돼야만 규제 내용을 미리 알 수 있다. 법률은 장래의 행동지침을 제공하고, 동시에 법 집행자의 차별적이거나 자의적인 해석을 예방할 수 있는 객관적 판단 지침이 돼야 한다. 그러나 상법 개정안은 추상적인 내용이 있다. 예컨대 이사가 회사에 도움이 되는 사업 기회를 포착하고 장기투자를 해 배당금이 줄어들면 주주들의 비난에 어떻게 대응할지가 명확하지 않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중소기업에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대기업에서는 소송 위험으로 인해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것도 어려워졌다는 자조적인 이야기도 들린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와 주주 이익의 보호라는 큰 틀에서의 사회적 합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경제 일선에서 뛰고 있는 기업들의 걱정을 덜어주지 않는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방법을 찾기란 어렵다. 우리는 1988년의 상법 개정 과정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상법 개정안은 다시 국회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타협과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정석호 한양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