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레이 대신 CT 찍고 안과서 혈액검사 남발 ‘의료비 폭탄’

입력 2025-04-01 23:00
흉부CT 검사 장면. 일부 의료기관이 코로나19 유행 기간 폐렴 진단을 위해 불필요한 CT 검사를 남발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일부 병원 과잉 검사로 의료비 과도 지출
환자 약물 복용 인식도 바뀌어야
운동·금연·건강검진 3가지 필수

‘일상을 건강하게, 의료 이용은 똑똑하게, 노후는 더 존엄하게.’


국민건강보험공단 정기석(사진) 이사장이 국민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 슬기로운 건강생활을 위해 던진 3가지 키워드다. 특히 강조한 것이 ‘과다 의료 이용 피하기와 현명한 진료 선택’이다. 정 이사장은 최근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 주최 미디어아카데미에서 의료기관의 과잉 검사 실태와 환자들의 과다 의료 이용 및 약물 복용의 심각성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10명 중 3명에 ‘코로나 폐렴’ CT 검사

우선 2022~2023년 코로나19 치료 환자에 대한 자체 분석을 통해 일부 병원에서 남발되는 CT 검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분석에 따르면 A병원은 2023년 한 해 동안 전체 치료 환자 8602명의 30.6%(2630명)에서 흉부 CT검사를 시행해 가장 많았다. 두 번째로 많은 B병원의 CT 검사 비율도 27.2%(1940명 중 528명)에 달했다. 두 병원 환자 10명 중 3명 정도가 ‘코로나 폐렴’ 확인을 위해 CT를 찍은 것이다. 2년간 입원 환자로 범위를 좁히면 전체의 97.2%에서 CT 촬영이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CT는 방사선 피폭량이 단순 X선의 수십 배에서 수백 배에 달해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닐 경우 찍지 않는 편이 좋다.

호흡기내과 전문의인 정 이사장은 “코로나 입원 환자 거의 대다수에서 CT를 찍은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폐렴은 CT로 진단하는 병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통상 폐렴은 X선 검사에서 침윤과 백혈구 수치 증가, 숨가쁨, 가래 등의 증상을 종합해 진단한다. 정 이사장은 “팍스로비드 같은 코로나 치료제가 충분히 공급되는 상황에서 특별한 증상이 없는 환자에게 무조건 CT 검사를 시행하면 작은 병변만으로 폐렴 진단이 넘쳐나고 결국 과도한 의료비 지출로 이어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앞서 공단은 어린이 폐렴 진단을 위해 CT 검사를 남발한 의료기관들을 공개한 바 있다.

피 검사를 불필요하게 과다 시행하는 사례도 제시됐다. 안과가 주 진료 과목인 C병원은 2023년 평균보다 11.66배 많은 일반 혈액검사(CBC)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D병원은 평균보다 3.20배, E병원은 3.05배, F병원은 3.02배, G병원은 2.82배 검사 비율이 높았다. 정 이사장은 “안과에서 피 검사로 백혈구, 적혈구 수치를 거의 매일 들여다볼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건보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적극적인 개선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아울러 환자들의 현명한 진료 선택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정 이사장은 “입원 병원에서 매일 피를 뽑아간다면 의료진에게 그 이유를 묻고 가벼운 증상인데도 CT를 자꾸 촬영한다면 왜 찍어야 하는지 한 번쯤 문의하는 자세를 가지라”고 당부했다.

과다 의료 이용 환자 인식 개선 필요

환자들의 의료 이용과 약물 복용에 대한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건보공단 내부 자료를 보면 2023년 기준 연간 외래 이용이 365회를 초과한 사람이 2448명이었다. 이들은 하루도 빠짐없이 병원 진료를 받았다는 뜻이다. 29.6%는 침구술, 29.5%는 침구술과 기본물리치료·주사·신경차단술, 17.4%는 기본 물리치료를 각각 절반 이상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난해 상반기 10종 이상의 약물을 60일 넘게 상시 복용한 사람이 136만명에 달했다. 전체의 82.2%가 65세 이상이었다. 25종 이상의 약물 복용자도 5000명이나 됐다. 특히 노인에게 있어 10가지 이상의 약물 복용은 잠재적으로 임상적 이익보다 위험이 더 큰 부적절 처방일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낙상, 감염, 메슥거림, 의식 혼미 등 각종 ‘의원성 질병’에 시달릴 수 있다는 게 전문가 의견이다. 정 이사장은 “건강보험 진료비의 43%를 노인이 차지하고 그 비율이 계속 증가하면 보험재정이 견디지 못하게 된다”며 불필요한 의료 이용 자제를 주문했다.

건보 공단은 국민의 합리적 의료 이용과 환자들의 선택권 향상을 위해 상반기 중에 로봇수술 등 비급여 진료 가격을 비교할 수 있는 ‘비급여 정보 포털’을 오픈한다. 아울러 주요 질환, 지역별로 급여·비급여를 포함한 평균 진료비 정보를 볼 수 있는 ‘진료비 정보 시스템(NHIS-MEIS)’도 준비 중이다. 9월에는 건강보험 관련 민원과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 정보, 각종 안내문 서비스, 간편결제까지 24시간 온라인 원스톱 서비스가 가능한 ‘건강보험 25시’도 문 연다.

또 전문 약사가 가정 방문을 통해 혹은 약국에서 복용 약물 점검과 상담, 처방 조정을 해 주거나 입·퇴원, 외래 방문 시 병원에서도 같은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사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올해부턴 서울·경기·강원·인천 지역의 장기 요양시설 대상으로 해당 사업을 신설했다.

“운동, 금연, 건강검진 챙겨야”

정 이사장은 일상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운동, 금연, 건강검진 3가지를 재차 강조했다. 운동을 위해 공단이 운영하는 건강백세 운동교실, 건강생활실천지원금 사업의 이용을 권고했다. 건강검진의 경우 올해부터 그간 교육부가 주관하던 학생건강검진을 공단이 수행하게 돼 일부 지역(세종, 원주, 횡성)에서 시범 사업이 진행 중이다. 또 56세 대상 C형간염 검사가 처음 도입됐고 기존 54·66세 여성에서 2회 시행되던 골다공증 검사는 60세가 추가돼 총 3번으로 늘었다. 20~34세 청년층 조기 정신증 검사도 신설됐다. 정 이사장은 “이제 생애 전 주기에 걸쳐 공단 건강검진을 통해 건강을 챙길 수 있게 됐다”면서 “다만 어린이 흉부X선, 콩팥질환 검사(크레아틴) 등 일부 불필요한 항목의 경우 근거를 기반으로 우선 개선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존엄한 노후를 시설보다 살던 곳에서 보내도록 통합재가서비스를 확대하고 이동 지원, 재택 의료, 낙상·편의 개선 등 각종 재가자립생활 서비스의 활용을 늘릴 방침이다. 1인용 장기 요양시설(유니트케어), 내성균 없는 전문 요양실, 장기 요양시설 내 임종실 설치 등을 통해 믿을 수 있는 요양시설을 갖추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