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울진과 안동 등지에서 연이어 발생한 대형 산불은 시스템 부재가 빚은 사회재난이 대부분이다. 매년 반복되는 봄철 산불의 악순환 속에서 국민은 “또 터졌구나”라며 무력한 일상을 받아들이고 있지만, 정작 국가의 대응 시스템은 아직도 사후 수습에 머물러 있다. 이쯤 되면 산불 안전 시스템의 전면적인 재정비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산불은 이제 산간지역에서나 벌어지는 ‘먼일’이 아니다. 산과 주거지역이 맞닿아 있는 지형 특성상 화재는 순식간에 민가로 번지고 도시 기반시설까지 위협한다. 최근 발생한 경북지역 산불에서도 안동시민 전체가 긴급 대피하고, 수많은 주택이 전소됐다. 인명 피해도 계속 늘고 있다. 문제는 뻔히 반복되는 상황 앞에서도 현장 대응력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라는 점이다.
일선 지자체는 노후 감시카메라 몇 대와 고령 감시원에 의존하고 있으며, 산림청은 대부분 예산과 지휘권을 독점하고 있음에도 효과적이지 않다.
산불 감시 인프라의 낙후, 초동대응 인력의 고령화, 예산 구조의 비효율성까지 겹쳐 산불은 늘 ‘대형화’된 이후에야 진압이 시작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는 산불 피해를 근본적으로 줄이기 어렵다.
일본과 미국은 일찌감치 이러한 문제를 극복한 듯하다. 일본은 산불 예방 및 복구는 우리나라 산림청에 해당하는 임야청이 맡고, 산불 대응은 전적으로 소방청으로 일원화해 지휘 혼선 문제를 해소했으며 드론과 첨단 위성 기반 감시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현장에서의 판단과 실행이 가능한 조직에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대응 속도와 효율을 높인 셈이다. 지방정부 예산은 중앙정부와 연동되어 재정 운용의 효율성도 높다.
미국은 더욱 진화한 형태다. 캘리포니아주는 매년 수조원 규모의 산불 예산을 편성하고, 국가기관협력산불센터(National Interagency Fire Center·NIFC)가 소방·군·지역사회가 연계된 통합지휘체계를 운영한다. ‘사고지휘시스템(Incident Command System·ICS)’ 기반의 표준화된 대응 프로토콜은 우리에게 강한 시사점을 던진다. 특히 ICS는 초기 대응부터 종결까지 일관된 지휘체계 유지를 가능케 해 조직 간 중복 투입이나 공백을 최소화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우리 역시 방향은 정해져 있다. 산불 지휘권과 예산은 현실적 대응 기관인 소방청으로 이관하고, 소방관서 내 산불 전담 부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도 산림청 중심의 ‘행정형 및 협력형 대응체계’에서 소방청 중심의 ‘현장형 및 전문형 대응체계’로 전환할 때다. 더 이상 부처 간에 ‘밥그릇 싸움’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드론 감시망 구축, 담수지 관리, 전문 진화장비 보강 등은 더 이상 유보할 수 없는 과제다.
선제적 대응을 위한 스마트 감시 인프라 확대는 물론 재난 시 현장 판단과 즉각적 행동이 가능한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산림청이 운영 중인 고령 비정규 인력 중심의 산불 감시체계 역시 소방 지휘 체계로 전환해서 퇴직 소방공무원 중심으로 재편해 전문성을 높이는 방안도 필요하다.
현장 경험과 대응 역량을 갖춘 인력을 중심으로 한 감시와 초기 대응이 가능해질 때 산불 피해는 줄어들 수 있다. 산불은 기후변화와 고령화, 도시 인접 산림의 증가 속에서 일상이 된 우리에게 재앙이 된 지 오래다. 이제는 지휘 체계, 전문인력, 스마트 기술이라는 ‘삼박자 체계’를 갖춘 선진형 시스템으로 나아가야 한다. 보다 강력하고 유기적인 대응체계 없이는 산불 재난을 반복적으로 떠안을 수밖에 없다.
산불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리가 늦장 대응하는 사이 불은 이미 우리 집 앞까지 다가온다. 이제는 ‘사후약방문’에서 벗어나야 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