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넷플릭스 등 빅테크의 막대한 데이터 전송량에 추가 요금을 부과하는 ‘망 사용료’ 논의가 미국 현지에서도 좀처럼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트럼프 신행정부가 출범하면 이들 글로벌 콘텐츠제공업체(CP)를 견제할 것이라던 일각의 예측과 달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보호무역주의 통상 정책에 우선순위를 두고 이들을 감싸면서다. 망 사용료 부과가 ‘비관세 장벽’으로 떠오를 수 있는 한국에서도 관련 논의가 완전히 실종된 상태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빅테크의 망 사용료 부과를 원천 차단했던 망 중립성 원칙은 트럼프 2기 출범 전 이미 폐기가 확정됐다. 지난 1월 2일 미국 제6순회항소법원은 ‘미 연방통신위원회(FCC)에 망 중립성 원칙을 복원할 권한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7년 트럼프 행정부가 폐기한 망 중립성 원칙이 차기 정부인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다시 복원됐는데, 이 복원을 무효로 간주해 폐기를 확정 지은 것이다.
망 중립성이란 인터넷망을 제공하는 통신사업자가 데이터 내용이나 사용량에 따라 데이터를 차단·감속하거나 별도의 이용료를 부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원칙이다. 본래는 일종의 ‘정보 접근 평등권’으로 제안된 개념이지만 실제로는 구글·넷플릭스 등 막대한 데이터 전송량이 필요한 업체에 도움이 됐다. 그동안 이들 빅테크는 이 중립성을 근거로 별도의 추가 사용료를 지불하는 것을 피해왔다.
지난 1월 제6순회항소법원의 판결은 이 같은 망 중립성 방어 논리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을 것이라는 함의를 담았다. 조만간 트럼프 대통령이 돌아오면 본격적으로 망 사용료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출범한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이 같은 논의를 찾아보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이 임기 초 우선순위를 통상 정책에 두고 빅테크에 대한 규제보다 ‘자국 기업 보호’를 강조하고 있어서다. 오히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연합(EU) 등의 빅테크 규제를 대표적인 ‘비관세 장벽’으로 꼽으면서 공격하고 있다.
한국의 망 사용료 현실화 논의도 미국을 따라 완전히 실종된 상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2023년 국내 통신망 1일 트래픽 사용량은 구글(30.6%)·넷플릭스(6.9%) 등 주요 빅테크들이 최상위권을 독점했다. 하지만 1·2위 사업자인 두 회사가 나란히 국내 통신사에 사용료 납부하기를 거부하면서 수년 전부터 ‘무임승차’ 논란이 이어져 왔다.
이번 22대 국회에서도 글로벌 CP사들의 무임승차를 방지하겠다는 취지의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소관 위원회에서 기약 없이 계류 중이다. 자칫 망 사용료 입법도 비관세 장벽으로 몰릴 수 있는 현 상황을 고려하면 당분간은 진전을 보이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21대 국회에서는 유사한 취지의 CP사 무임승차 방지 법안이 7건 발의됐지만 모두 결실을 거두지 못하고 폐기됐다.
세종=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