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미국 관세 공세 속 잇따라 열린 한·중·일 고위급 회의

입력 2025-03-31 01:20
안덕근(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30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제13차 '한·일·중 경제통상장관회의'에서 무토 요지(왼쪽) 일본 경제산업상,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과 악수하고 있다. 3국 경제통상장관회의는 2019년 12월 중국 베이징 회의 이후 6년 만이다. 이날 3국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논의에 속도를 내기로 했다. 권현구 기자

지난 22일 한·중·일 외교장관회의에 이어 일주일여 만인 지난 30일 서울에서 한·중·일 경제통상장관회의가 열렸다. 평소라면 정례적 국제회의로 여길 수 있지만 미국의 관세 공세가 한창인 요즘, 잇따른 한·중·일 고위급 회의의 주목도는 훨씬 높아졌다. 이들 3국이 미국의 주요 무역 적자국들로 관세 부과 대상이 유력하다는 동병상련의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급변하는 글로벌 통상 환경과 안보 여건을 고려할 때 3국 간 협력에 대한 공감대는 갈수록 커질 것이고 우리도 이런 흐름을 마다해선 안 된다.

3국 장관들은 6년 만에 개최된 이번 회의에서 공급망 안정화, 수출 통제 관련 소통 강화, 녹색·디지털 경제 달성을 위한 산업·에너지 협력 강화 등을 긴밀히 협조해나가기로 했다. 눈에 띈 건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필요성에 공감대를 표한 점이다. 그간 한·중 간에만 FTA가 체결됐고 3자 FTA는 여건 차이 등으로 논의에 속도를 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 3국이 FTA를 언급한 건 미국의 상호관세 발표(4월 2일)를 앞두고 공동의 대응 방향을 모색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지난해 미국의 국가별 무역적자 순위를 보면 중국이 1위(2954억 달러)이고 일본(8위·685억 달러), 한국(9위·660억 달러)이 10위 내에 포진했다. 미국은 철강·알루미늄·자동차 등 개별 품목관세에 이어 곧 전 세계 국가의 대미 관세에 준하는 ‘상호관세’를 발표한다. 미 당국은 특히 동맹 여부와 관계 없이 대미 흑자폭이 크고 비관세장벽을 유지하는 나라를 ‘더티(지저분한) 15’로 부르며 관세 폭격을 거론한 터여서 3국에 대한 고율 관세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다. 이런 점에서 통상장관회의보다 앞서 열린 외교장관회의에서도 경제협력이 중점적으로 논의됐다. 미국의 일방주의 관세 정책에 모처럼 3국이 하나가 된 셈이다.

한·미 동맹의 중요성을 간과해선 안 되지만 글로벌 경제와 안보 패러다임을 흔들고 있는 트럼프 2기 행정부 특성상 마냥 동맹의 선의에 기댈 순 없다. 국익 차원에서 외교의 다변화는 이제 필수다. 중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가까우면서 우리와 산업 연관성이 높아 3국의 협력은 미국의 관세 압박에 적절한 대응수단이 될 수 있다. 또 고령화, 내수 부진 등 경제 제반 환경이 비슷해 3국 FTA의 경제 영토 확대 효용도도 작지 않아 보인다. 물론 중국의 미진한 북핵 대응, 특유의 주변국 압박 외교에 대한 우려가 없지 않다. 미국의 해외 미군 재배치 전략 등에 따른 한·중 갈등 가능성도 상존한다. 그럼에도 많은 국가와 대화, 협력의 끈을 만들어 놓는 게 글로벌 환경 급변의 시기에 위기에 대한 최적의 대응임을 부인할 순 없다. 미국이 몸소 알려준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는 원칙을 우리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