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치료 걸림돌 ‘숨은 임파선 전이’… CT 영상 예측 모델 나왔다

입력 2025-03-31 23:09
폐암 환자의 CT 영상에서 ‘숨은 임파선 전이’가 관찰된 특징들. 왼쪽부터 종양 가장자리의 뾰족한 가시 모양, 폐 기관지 내부의 종양 침범, 폐쇄성 폐렴, 종양 주변의 뿌연 간유리 음영. 중앙대병원 제공

다른 암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유독 폐암 환자들의 속을 태우는 것이 ‘임파선 전이’ 여부다. 아무리 작은 폐암이라도 그 위치와 크기에 상관없이 임파선 전이로 인해 1기 폐암이 아닌 2·3기로 병기가 올라갈 수 있고 그에 따라 완치를 목표로 하는 수술을 받지 못한 채 힘겨운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폐암의 경우 수술 전 찍은 CT 영상(저선량 CT 포함)에서 직경 1㎝ 이상의 임파선이 확인되거나 PET-CT(양전자방출단층촬영)에서 임파선에 이상 소견이 보일 때 ‘임파선 전이’가 있다고 판단해 임파선 조직 검사를 거쳐 병기에 반영한다.

그런데 수술 전 영상에서 임파선 전이가 없다고 판단했다가 수술장에 들어가 절제한 임파선 검체에서 암세포가 확인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런 ‘숨어있는 임파선 전이’가 전체 수술 환자의 5~10%에서 확인된다. 그렇다면 폐암 환자의 치료법 선택과 예후에 중요한 잠복 임파선 전이를 예측할 순 없을까. 국내 연구진이 힌트가 될만한 연구 결과를 내놨다.

중앙대병원 심장혈관흉부외과 윤동욱 교수와 삼성서울병원 연구진이 함께 폐절제 수술을 받은 폐암 환자 2042명을 상대로 연구를 진행했다. 환자들의 흉부 CT 영상에서 종양의 특이한 형태와 위치, 모양으로 ‘숨은 림프선 전이’를 예측하는 모델을 확립해 연구 논문을 유럽영상의학회 학술지(European Radiology) 최신호에 발표했다. 연구 대상의 수술 후 최종 병기는 1기가 80%, 2기가 약 12%, 3기가 약 7%였다.

연구에 따르면 CT 영상에서의 특징에 따라 임파선 전이 확률이 달랐다. 우선 암이 폐의 기관지 안을 침범했거나 폐쇄성 폐렴(원위부 혼탁)이 보이는 경우 36%에서 숨은 임파선 전이가 관찰됐다. 또 폐암 병변 내부가 액체나 공기로 차 있는 주머니 모양(낭포성 종양)인 경우 6%의 확률로 임파선 전이가 확인됐다.

또 CT 영상에서 보이는 종양 내의 불투명한 ‘고형(덩어리) 부분’과 ‘간유리 음영’의 비율도 임파선 전이 판단에 중요한 요소로 간주됐다. 간유리 음영은 폐 일부분이 유리 표면을 사포로 문질러 불투명해진 유리처럼 뿌옇게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종양 내 고형 부분이 50% 미만일 땐 1%, 50% 이상일 땐 12%, 전체가 고형으로 가득 차 내부 폐 조직이 완전히 보이지 않는 ‘순수 고형’인 경우엔 18%에서 임파선 전이가 있었다.

종양의 가장자리 모양도 유의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폐암 고형 부분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종양의 경계면이 불규칙한 경우 18%, 가시 모양으로 뾰족할 땐 약 30%, 작은 잎 모양인 경우 16%, 종양 주변에 간유리 음영이 있을 땐 36%로 임파선 전이가 관찰됐다. 또 폐암의 고형 부분이 100%를 차지하고 가장자리가 불규칙할 땐 11%, 가시 모양일 땐 38%, 작은 잎 모양인 경우 13%, 종양 주변 간유리 음영이 있을 땐 50%에서 임파선 전이가 나타났다.

윤 교수는 31일 “CT 영상에서 특이한 형태로 관찰되는 폐암 환자들을 대상으로 숨은 임파선 전이를 분석한 연구는 기존에 많지 않았기에 이번 연구가 의미있다”면서 “특히 종양이 기관지 내에 위치하거나 주변 폐 조직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 임파선 전이 확률이 굉장히 높게 관찰돼 이런 환자들은 수술 전에 임파선 조직 검사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보다 세밀한 임파선 조직 검사를 통해 정확한 병기 설정을 하고 거기에 맞는 치료 방침을 세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CT 검사를 단순한 영상 진단 도구가 아닌, 정밀 예측 도구로 사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윤 교수는 “이를 통해 의료진이 침습적 임파선 평가 절차를 보다 신중하게 적용할 수 있고 환자들은 불필요한 시술을 받는 사례가 줄어들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폐암은 2022년 기준 3만2313명이 새로 발생해 전체 암 3위(11.5%), 남성에선 1위의 암이다. 흡연이 원인의 90% 이상을 차지한다. 이 때문에 54~74세 30갑년 이상 흡연자들에게 저선량CT를 통한 국가폐암검진이 이뤄지고 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