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산불 피해 복원 알고리즘

입력 2025-03-31 00:40

2002년 태풍 루사의 기록적 폭우로 강릉에서 산사태가 속출했는데, 산에 따라 피해가 극명히 엇갈렸다. 일반 산지에서 1㏊당 1.6t의 흙이 흘러내린 반면, 2년 전 동해안 산불이 휩쓸었던 산에서는 무려 14t이 쏟아졌다. 산불이 산사태를 10배 키운 것이다. 2017년 대형 산불을 겪은 경북 상주에선 3년 뒤 솔수염하늘소 서식 밀도를 조사했더니 31배나 증가해 있었다. 소나무재선충병의 매개 곤충인데, 선 채로 타죽은 고사목들이 산란처를 제공해 급격히 늘어난 거였다. 홍수에 사람 전염병이 창궐하듯, 산불은 나무 병충해를 부른다.

이처럼 2차, 3차 피해를 겪는 산불 삼림이 제 모습을 되찾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산사태가 진정되는 데 최대 5년이 걸리고, 계곡의 물고기는 3년, 게아재비 등 무척추동물은 9년, 개미류는 13년이 지나야 돌아온다. 나무가 자라 숲의 외형을 갖추는 데 30년은 소요되니 숲에 사는 새와 짐승도 그제야 다시 찾아볼 수 있다. 숲 생태계의 오랜 순환을 통해 형성되는 산림 토양이 예전 기능을 회복하기까지는 100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산불 피해 복원 연구는 1996년 고성 산불과 2000년 동해안 산불로 전환점을 맞았다. 국립산림과학원은 고성·삼척 일대를 장기생태연구지역으로 정해 산불 이후 생태 변화와 회복 과정을 20년 넘게 관찰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자연이 알아서 복원케 놔둔 지역이 인위적 복구에 나선 조림지보다 야생동물 회복 속도가 빨랐다고 한다. 미국 호주 캐나다 등 산불이 잦은 나라마다 자연복원기법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역시 숲은 사람이 손대지 않은 상태가 최선인 듯한데,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가 이미 숲을 위협하고 있으니 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내화성 수종을 심어 방화선을 만들어주고, 혼합림을 유도해 화재 저항력을 높여주는 등 어느 정도 개입이 필요해 보인다. 자연복원과 인공복구를 적절히 혼합해 최적의 복원 알고리즘을 찾아내려는 과학원의 노력이 어서 결실을 맺어 역대 최악의 경북 산불 지역에 접목되기를 바란다.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