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한국 엘리트는 왜 괴물이 됐나

입력 2025-03-31 00:35

미국과 유럽의 경우와 달리
한국 극우, 엘리트 집단이 주도

정치적 독재 몰아냈지만
적자생존 약육강식 흑백논리
문화적 파시즘 순응했기 때문

교실서 12년간 체화한 우리,
사회적 독재 끝낼 수 있을까

최근 세계에서 가장 유행하는 말 중 하나가 ‘엘리트주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유럽 극우의 부상, 그리고 한국 정치의 극우화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구의 극우와 한국의 극우는 양상이 다르다. 서구에서의 극우는 교육 수준이 낮은 백인 남성이 주류를 이루며 반이민, 권위주의, 국수주의 이데올로기를 내세운다. 반면 한국의 극우는 개신교 근본주의와 영남을 기반으로 하며 반공과 친미라는 이데올로기로 이뤄져 있다. 무엇보다 서구의 극우가 반엘리트주의라면 한국의 극우는 친엘리트주의다.

윤석열 대통령 계엄 사태 후 너무나 놀랍게도 계엄에 찬성하는 세력이 부정선거 음모론과 중국 간첩설 등을 동원해 계엄령을 ‘계몽령’이라 부르며 기괴한 논리를 내세웠다. 한국 최고 엘리트 집단인 법조인, 정치인, 지식인들이 계엄이 정당하다며 거리로 뛰쳐 나와 대중을 선동하고 있다. 한국 엘리트는 왜 괴물이 되었나.

여기에 가장 설득력 있는 설명 중 하나는 김누리 교수의 ‘연성 파시즘’론이다. 연성 파시즘은 문화적 파시즘으로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논리를 문화적으로 체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한국인의 문화적 파시즘은 어디서 왔는가. 그것은 한국 교실에서 왔다. 문화적 파시즘은 강자 동일시, 약자 혐오, 동조 강박, 공격성, 흑백 논리를 특징으로 한다. 곧 교실에서 우리는 12년 동안 1등이라는 강자와 동일시하고 성적이 낮은 학생을 혐오하며 ‘SKY’를 향해 모두 강박적으로 매달린다. 이런 학생들은 교실이라는 교육의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우 공격적이며 승자 아니면 패자라는 흑백 논리로 세상을 바라본다. 따라서 교실에서의 승자는 파시즘을 내면화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야말로 전교 1등이 파시스트가 될 확률이 제일 높다. 한국인들은 누구나 이와 같은 교육을 받았기에 이념에 관계없이 절대다수가 파시스트가 될 가능성이 크다.

당신은 이렇게 반박할지 모른다. 응원봉을 들고 집회에 나가 극우 세력에 대항해 싸웠는데 내가 왜 파시스트인가. 문화적 파시즘은 정치적 독재에서 벗어났다고 해도 ‘사회적 독재’에 시민들이 순응하는 현상에 주목했다. 곧 제도적 민주주의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강자를 숭배하고 그들의 비민주적 지배를 성찰 없이 따른다면 당신은 사회적 독재를 숭배하는 파시스트다. 문화적 파시즘을 아주 어린 나이부터 한국 교실에서 12년 동안 내면화했기에 한국인의 파시스트 경향은 ‘무의식적’으로 형성된다. 당신은 집회 참석 후 돌아와 아이의 학원을 걱정하고, 아파트 가격을 걱정하며, 직장이라는 정글에서 승리하기 위해 애쓴다. 비록 당신이 정치적 민주주의자라고 하더라도 당신은 ‘사회적 독재’에 무의식적으로 참여하고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일상을 살아간다.

프랑스 68혁명을 흔히 문화혁명이라 부른다. 대학의 권위주의에 반발해 시작된 이 운동은 정치적 권위주의보다 ‘사회적 독재’에 맞서 싸웠고 결국 문화적 민주주의와 일상의 민주주의를 성취했다. 68혁명 이후 프랑스 국민들은 샤를 드골 대통령을 쫓아내 정치적 권위주의를 종식시켰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회적 특권의 상징인 ‘파리대학’을 1대학부터 13대학까지 평준화시켰다. 곧 정치적 독재뿐만 아니라 사회적 독재를 종식시켰다.

무의식적 파시스트인 한국인들은 대통령을 쫓아낼 수 있어도 서울대를 평준화시킬 수 있을까. 정치적 독재는 끝낼 수 있어도 사회적 독재도 끝낼 수 있을까.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지방 거점국립대 10개를 서울대 수준으로 키워 서울대를 상향 평준화하자는 정책이다. 당신이 아무리 민주주의자일지라도 당신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서울대라는 ‘사회적 독재자’를 제거하기는 매우 어렵다. 한 해 사교육비 32조원과 요즘 유행하는 7세 고시는 괴물이 된 한국 교육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당신과 당신의 아이들이 교육 파시즘에 빠져 서울대 독재, 대치동(사교육) 독재, 강남 독재에 순응할 때 사회적 독재는 계속되고 사회적 고통은 지속된다.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은 프랑스 68혁명이 파리대학의 평준화를 통해 사회적 독재를 종식시켰듯이 서울대를 평준화시켜 사회적 독재를 끝내려는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 괴물이 된 엘리트들을 키운 건 우리 교육과 이 속에서 길러진 우리 자신이 아닌지 깊이 성찰해 봐야 할 때다.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