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 아닌 사람에 투자” 평신도가 삶으로 복음 전하는 이 교회

입력 2025-03-31 05:07
장수현 길가에교회 목사가 지난 11일 교회 예배당으로 쓰이는 경기도 남양주 동화중고교 화록홀에서 교회 사역을 설명하고 있다. 남양주=신석현 포토그래퍼

매주 화요일 점심마다 경기도 남양주 도농역 바로 맞은편에선 ‘국수 잔치’가 열린다. 10여 년간 지역 주민에게 잔치국수를 대접해온 길가에교회의 ‘사랑 나눔 국수 먹는 날’ 사역 이야기다. 지난 11일 정오에 찾은 교회에선 국수 나눔이 한창이었다. 앞치마를 두른 봉사자들은 교회를 찾은 이들을 자리로 일일이 안내한 뒤 고명을 얹은 따끈한 국수 한 그릇을 내왔다.

이날 교회서 만난 장수현(50) 목사도 국수 봉사에 동참 중이었다. 장 목사는 “많이 오실 땐 300분 가까이 오신다”며 “어르신이 주로 찾지만 지나가다 들르는 젊은 분도 꽤 된다”고 귀띔했다. 교회 행사지만 출석이나 전도 등의 강요는 전혀 없다. “사랑과 복음은 국수에 기도로 담으면 족하다”는 게 이 교회 입장이다. 장 목사는 “지역 분들과 만날 때 ‘길가에교회 목사’라고 소개하면 십중팔구는 국수를 떠올리더라”며 “오랫동안 이 사역을 하니 국수 주는 교회로 소문났다”며 웃었다.

건물 대신 사람 키우는 목사

서울 송파구 주님의교회와 서울 강남구 푸른나무교회 등에서 부목사를 지낸 그는 지난 2023년 12월 길가에교회에 부임했다. 앞서 목회한 교회 두 곳과 현 교회의 공통점은 ‘건물 없는 교회’라는 것이다. 동화중고교 내 위치한 길가에교회는 이 학교 화록홀을 예배공간으로 활용한다. 주님의교회의 분립 개척으로 2005년 설립된 교회는 미션스쿨인 학교와 협력하며 지역사회와 다음세대 선교에 주력하고 있다. 장 목사는 “건물을 따로 짓지 않는 교회에서 주로 사역하면서 배운 건 건물 아닌 사람에 투자하는 목회”라며 “우리 교회 역시 재정 사용 1순위가 다음세대 사역이다. 그렇기에 수년간 건물 없는 교회를 경험한 저를 청빙한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세대에 중점을 두는 교회답게 성도 가운데 중고등부 비율이 높은 편이다. 매주 출석 교인 250여명 중 150여명(60%)이 청소년이다. 그 역시 부임 직후 이끈 첫 특별새벽기도회에서 다음세대를 위한 헌금을 독려하며 교회 사역 방향을 명확히 했다. 매주 금요일 오후 4시엔 하굣길에 오른 학생에게 컵라면도 나눈다. 국수 나눔과 마찬가지로 전도보단 몸과 마음이 허기진 청소년을 격려하는 데 목적이 있다.

교회 이름에 들어간 단어 ‘길가’에는 ‘예수 그리스도’이자 ‘이웃과 함께하는 삶의 현장’, ‘목적지’와 ‘과정’이란 의미가 담겼다. 이름답게 교회는 지역사회와의 소통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2023년부터 매해 추수감사절엔 제철 과일 꾸러미를 만들어 관내 자립준비청년에게 전달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창립기념일을 맞아 전 성도가 하루에 100원씩 3만6500원을 모아 지역을 위해 헌금하기로 했다. 그는 “길가엔 수많은 이름 모를 생명이 있다. 사소해 보이나 모두 하나님이 키우는 존재”라며 “길가의 들풀처럼 소외된 이들에게 관심을 쏟는 일 자체가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는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지역·다음세대 섬김 주체는 평신도

매주 화요일 열리는 교회의 '사랑 나눔 국수 먹는 날' 사역에 참여한 성도들이 이날 지역 주민에게 국수를 대접하는 모습. 남양주=신석현 포토그래퍼

길가에교회는 성도가 주축이 돼 각종 사역을 진행한다. 이는 ‘성도가 목표를 세우면, 교회는 지원한다’는 정 목사의 목회 철학에 기인했다. 그는 “성도 주도 사역을 강조하는 건 우리 교회가 목회자 임기가 있는 교회이기 때문”이라며 “담임 목사 임기가 끝나면 사역도 없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라 이를 방지하기 위해 성도에게 사역뿐 아니라 예배 기획도 맡긴다”고 했다. 실제로 교회는 한 달에 한 번 평신도가 주관하는 오후 예배를 드린다. 이 예배에서는 설교자와 순서 등 예배 전반을 성도들이 주관한다.

성도 주도 사역 이외에도 담임 목회자의 주도권을 분산하는 문화는 또 있다. ‘매달 1회 부교역자 설교 정례화’와 ‘이웃 교회와의 강단 교류’다. 장 목사는 “교회 안팎에서 마주하는 이들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가꿔나가는 것 또한 우리의 주요한 사명”이라며 “상생하는 목회를 위해 부교역자에게 설교 기회를 정기적으로 주고 있다”고 했다. 또 “지난해엔 ‘한 목사 설교만 듣지 말고 여러 목회자의 이야기도 들어야 한다’며 이웃 교회와 강단 교류도 했다”며 “주변 미자립교회와 강단 교류를 하며 사례비를 후원하고자 한다”고 부연했다.

“예배당 아닌 일상에서 영향력을 드러내는 기독교인을 양성하는 게 목표”라는 그는 ‘관계’와 ‘함께’를 중시하는 차세대 목회자가 늘길 기대했다. 장 목사는 “한국교회가 세상에서 지탄받는 지금, 기독교인은 특별한 사역이 아닌 일상의 삶과 관계에서 예수를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성도들이 행복하게 이웃을 섬기고 배려할 때 세상은 교회에 관심을 보일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앞으로도 성도들과 동행하며 사역을 해나갈 것”이라며 “향후 지역사회와 협력해 문화공연 등을 열며 이웃과의 접점도 늘려나가겠다”고 말했다.

남양주=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