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던 동네가 폭격 맞은 듯… 이재민 “돌아갈 곳 없어”

입력 2025-03-28 19:28
28일 오후 경북 영양군 이재민 대피소인 영양군민회관에서 한 어르신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경북 지역을 휩쓴 유례없는 초대형 산불은 대부분 진화됐지만,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주민들은 돌아갈 곳을 잃었다. 경북 영덕군 지품면 수암리 주민들은 대부분 영덕읍에 있는 대피소로 대피해 마을은 인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폭격을 맞은 듯 많은 집이 무너졌고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유령마을이란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나마 화마를 가까스로 비켜 간 집에서는 한 주민이 연신 물로 청소하고 있었다. 이 주민은 “청소를 해도 해도 끝이 없다. 집을 제외하고 창고 여러 개가 다 탔고 가전제품이나 창고에 있던 깨, 소금 다 탔다”고 말했다. 이미 전기나 가스 공급이 끊긴 상태다.

인근 복곡리도 산불에 곳곳의 주택이 타는 등 처참한 모습이었다. 통신과 전기는 끊어진 채였다. 마을회관에 너댓명만 있을 뿐 대부분 대피소에 간 상황이었다. 80대 주민은 “불이 번지자 옷만 입은 채 그대로 나왔다”며 “집도 다 타고 아무것도 없다”고 전했다.

인근의 원전리나 청송군과 경계 지점인 황장리도 마찬가지다. 아직 불이 덜 꺼져 흰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 벽돌이 무너진 주택, 철판만 널브러진 창고 등이 가득했다. 사과나 배, 복숭아 등 과수원에서 피해를 본 곳도 많다. 아직 전기와 통신이 연결되지 않아 많은 주민이 힘들어하고 있었다. 주택이 불에 타버렸다는 80대 할머니는 “돌아갈 곳이 없다. 가족이 와야 여기를 벗어날 수 있다”며 “보청기 충전기를 집에 두고 와서 말소리도 잘 들리지도 않는다”고 토로했다.

영덕군이 이재민을 위해 마련한 10개 대피소에는 890명이 머물고 있다. 대피소 생활이 길어지면서 이재민들과 자원봉사자들 모두 지친 상태다. 영양군 이재민 대피소에서 만난 80대 할머니는 “집에 갔다가 다시 산불이 심해져서 대피하는 생활이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생필품 등 구호 물품도 여유롭지 않다. 영양군 관계자는 “구호세트가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이불도 빨래할 수가 없어서 털기만 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산불 진화대원을 향한 온정도 이어졌다. 청송의 한 식당은 지난 26일부터 ‘소방관분들은 당분간 식사 무료 제공’이란 안내문을 붙였다. 식당 업주는 “소방관이나 산불진화대원의 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당분간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니 이용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영덕의 한 커피숍은 27~28일 진화대원, 소방대원, 공무원, 경찰 관계자에게 아메리카노 커피를 무료로 줬다. 안동의 한 국수식당과 의성의 커피숍도 진화대원 등에게 식사와 커피를 무료로 제공했다.

영덕=안창한 기자, 홍성헌 기자